'갱스 오브 뉴욕'(Gangs of New York·28일 개봉)이란 제목만 보고
매끈한 갱영화를 기대하지 말 것. 이 영화 속 각종 대결 장면은 호쾌한
액션이 아니라 소름끼치는 살육의 지옥도에 가깝다. 어쩌면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혹사당하는 감각은 시각이나 청각이 아니라 후각일지도
모른다. 보는 이를 압도하는 이 영화의 피비린내는, 등장 인물들이 총
대신 칼과 도끼를 휘두르며 싸우는 장면에서 뿐만 아니라, 분노와
욕망으로 얽힌 인물들간의 드라마에서도 폴폴 풍겨난다.
거장 마틴 스코세지는 언제나 과도한 듯 폭력을 다루면서도, 폭력이란
결코 '스타일'이 아님을 보여준다.
1840년대 뉴욕 슬럼가 파이브 포인츠에서 아일랜드 이민 세력과 원주민
세력이 정면 충돌한다. 원주민 세력을 대표하는 잔혹한 빌(대니얼
데이-루이스)은 이 싸움에서 아일랜드 이민 세력의 대표인 발론
신부(리엄 니슨)을 살해해 파이브 포인츠를 평정한다. 그 비극을 생생히
목격했던 발론 신부의 아들 암스테르담(리어나도 디캐프리오)은 세월이
흐른 뒤 청년이 되어 복수를 위해 몰래 빌의 측근이 된다. 그에게서
신임을 얻어가던 암스테르담은 빌의 애인 제니(캐머론 디아즈)와 사랑에
빠진다.
올 아카데미 10개 부문 후보에 오른 시대극 '갱스 오브 뉴욕'에서
연출을 맡은 마틴 스코세지는 장대한 미학적 비전과 내밀한 독백을 한
이야기 속에 공존하게 만들었다. 남북전쟁기 뉴욕을 무대로 정치적
갈등에서 이민자와 토착민의 대립까지를 생생히 기록하려는 그의 의도는
영화감독을 넘어서 카메라를 들고 거대한 벽화를 그리는 사가(史家)가
되려는 야망에 다름 아니다. 다른 한편 이 영화에는 가톨릭 신부가
되려다 실패했던 이탈리아 이민자 후손 스코세지의 개인사가 등장
인물들의 갈등과 아픔 속에서 숨쉬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이 모든 요소들의 밑바닥에는 뉴욕에 대한 그의 사랑이 있다.
'택시 드라이버' '뉴욕 뉴욕' '분노의 주먹'으로 뉴욕 영화를
대표했던 스코세지는 폭동으로 폐허가 된 당시 뉴욕을 비추다가 화면을
바꿔 마천루가 이어지는 현대 뉴욕의 번영을 담으며 '갱스 오브
뉴욕'을 끝낸다. 극을 맺으며 "뉴욕은 그렇게 탄생했다"는 내레이션이
깔리고나면 록그룹 U2의 노래 '아메리카를 세운 손(The hands that
built America)'이 장엄하게 흐른다. 스코세지 필생의 테마인 '폭력과
희생 그리고 구원'은 여기서 다시 한 번 극을 이끌어가는 원동력이
된다.
리어나도 디캐프리오는 올 겨울 이 영화와 '캐치 미 이프 유 캔'에서
전혀 다른 두 가지 모습을 동시에 선보임으로써 '타이타닉' 이후의
침체기를 벗어났다. 초반에 잠깐 등장하는 리엄 니슨부터 브랜던
글리슨과 존 라일리까지, 조연들의 진중한 연기 하나하나도 극에 잘
어울린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진정으로 빛나는 단 하나의 연기는 대니얼
데이-루이스의 것이다. '나의 아름다운 세탁소'에서 신선한 모습을
발견한 이래 '나의 왼발' '라스트 모히칸' 같은 작품들을 통해 그의
서로 다른 매력을 확인해 온 팬들이라도 이 영화의 연기엔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분노를 칼로리로 삼는 인물 '도살광 빌' 역의 대니얼
데이-루이스는 시종 넘쳐나는 에너지로 무시무시한 캐릭터를 빚으며
영화사에 남을 만한 악역 하나를 완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