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 산책] 아르노프스키의 ‘레퀴엠’을 보고

      입력 : 2002.07.25 17:56

      중독된 삶-죽음의 향기…“야! 이거 철학적인데”

      무언가에 중독된 인간군상의 삶을 충격적으로 그린 영화 ‘레퀴엠 ’.



      외화 ‘레퀴엠’이 화제다. ‘중독’에 빠져 파국으로 치닫는 인간 모습을 담아낸 이 영화는 코아아트홀, 브로드웨이, 인사동 미로스페이스 등 단3개관에서만 개봉됐지만 70% 안팎의 객석 점유율을 보이며 관객이 줄잇는다. 영화를 본 가수 조영남씨의 글을 싣는다. (편집자)

      일산에 있는 국립암센터 이진수박사를 만났다. 이주일선배의 폐암치료
      담당의사님이시다. 내가 먼저 인사를 던졌다. “죽음을 앞둔 사람들과 늘
      함께 하시니 얼마나 힘드십니까.” 이 박사가 이렇게 받아넘겼다. “우리
      모두가 죽어가고 있는 사람들 아닙니까?” 우리는 한바탕 웃었다. 그러나
      그 웃음은 우리가 까맣게 몰랐던 사실에 대한 경각심이 섞여있는 섬뜩한
      웃음이었다.

      그날 오후 영화를 좋아하는 후배 녀석이 숨넘어가는 소리로 말했다.
      “형, 이 영화는 꼭 봐야돼요. 인터넷에서 영화역사상 통털어 꼽은 베스트
      250편중 단숨에 39위로 올라간 물건이에요.” 그래서 물어물어 찾아가 본
      영화가 바로 미국 하버드대학 출신 30대감독 아르노프스키의
      ‘레퀴엠’이라는 영화다. 내가 하버드대학을 들먹거린 이유는 따로
      있다. 나는 이토록 인텔렉추얼한 철학영화를 처음봤기 때문이다. 영화는
      도입부에서부터 삶은 무엇이며 죽음은 또 무엇인가하는 의문을 짙은
      푸른빛 영상을 통해서 무차별하게 던져준다.

      스크린엔 뉴욕 브룩클린의 어느 평범한 집안 풍경이 마치 질낮은 병원
      영안실 풍경처럼 펼쳐진다. 인물들은 하나같이 살아있는 시체처럼
      보인다. ‘저러다가 곧 죽게 생겼다’는 말이 입 속에서 뱅뱅돈다.
      엄마는 다이어트 약물중독으로 죽어가고 자식과 그의 여자 남자 친구들은
      코카인 중독으로 죽어간다. 영상전체에서 내뿜는 악취의 역겨움때문에
      보통 관객이라면 영화관을 뛰쳐 나와야한다. 그러나 뛰쳐 나가질 못하게
      한다. 그런 최후의 사람에게서 조차 피어나는 향기가 있기 때문이다.
      가족의 소중함, 애인과 친구를 한데 묶는 사랑과 우정, 그리고
      무엇보다도 단 한사람 예외없이 필사적으로 부여잡고 있는 지푸라기같은
      희망과 꿈들, 그것이 지속적으로 악취를 제압해 나간다.

      그러니까 인생이 마냥 유쾌한 사람한테는 이 영화가 아무짝에도
      쓸모없다. 최소한 영화가 얼만큼 철학적일 수 있는가, 하다못해 영화는
      어떻게 만들어야 잘 만들었다는 소리를 듣는가, 한발 더 나가서 ‘그럼
      우리는 과연 어떻게 죽어가야 하는가? 질문하고 싶은 사람은 둘중에 한
      가지는 택해야한다. 암센터의 이진수박사를 만나보든가 영화 ‘레퀴엠’을
      보든가. 왜냐하면 ‘어떻게 죽어야 하는가’나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는 쌍둥이처럼 닮은 말이기 때문이다.

      (조영남· 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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