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안경박물관

      입력 : 2001.10.25 19:56



      임진왜란 직전에 일본에 통신사로 다녀온 김성일의 후손집에서
      김성일이 쓴 것으로 전해온 안경이 나왔는데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최초의
      안경이 될 것이다. 이 한국 최초의 안경이 얼마 전에 개관한 전남
      초당대학교의 안경박물관에 전시되었다 한다. 300여개의 안경이 전시된
      이 박물관의 유명인 안경 전시실에는 정조대왕과 고종황제가 썼던 안경을
      비롯, 이승만 이래 역대 대통령이 썼던 안경, 김구·전봉준·맥아더가
      썼던 안경도 전시되었다 한다.

      정조실록23년(1799) 기록에 정조가 눈이 나빠 안경을 끼었다 하고,
      우리나라에 안경이 들어온 것은 그로부터 200년 전이라 했으니 임진왜란
      중에 들어왔을 확률이 높다. 1250년에 몽골에 갔던 프란체스코 수도사의
      기록에 당시 몽골사람들이 안경을 끼고 사는 것을 보고와 동료 수도사로
      하여금 1268년에 만든 것이 서양안경의 시초라는 설이 있다. 그렇다면
      안경의 기원은 몽골이며 빈번하게 교류했던 고려시대에 안경이 들어왔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우리나라 안경의 사회사는 흥미롭고 다양했다. 안경을 끼면 불손하다는
      인식도 그 하나다. 헌종 때 일이다. 임금의 외숙이 안질이 있어 안경을
      끼고 대궐에 드나든다는 말을 듣고 헌종은 『외숙의 목이라고 칼이 들지
      않을꼬』하고 뇌까렸더니 외숙은 침식을 잃고 고민하다가 자결하고
      말았다. 미국서 돌아온 서재필이 아관에 파천해 있는 고종황제를
      배알하고 환궁을 건의했을 때 안경을 끼고 배알했던 것 같다. 정적인
      친로파가 서재필을 역적으로 몬 저의는 환궁 건의지만 명분은 어전에서
      안경의 끼었다는 불손이었다.

      신분 과시용으로 안경을 끼기도 했다. 교황 레오10세가 라파엘에게
      초상화를 그리게 했을 때 눈이 나쁘지도 않았는데 일부러 안경을 끼고
      그리게 했다는 것도 권위의 상징으로 안경을 이용했다는 것이 된다.
      임오군란 후 수신사로 일본에 간 김기수는 눈이 나쁘지
      않았는데도 왜인들을 내려보는 효과를 그로써 노렸던 것이다. 개화기에
      안경을 끼거나 들거나 저고리 깃에 달고 다니는 기생이 더러 있었는데
      이들도 눈이 나빠서가 아니라 기생사회에서는 엘리트인 약방기생
      출신임을 과시한 것이라 한다. 안경박물관은 이런 저런 안경들이 수집돼
      있어 안경을 통해본 한국사회사의 교실구실도 할 것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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