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꾸는 소녀의 행복 찾기…'아멜리에'

  • 이동진기

    입력 : 2001.10.14 19:15

    아버지를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서 난장이 인형을 훔치는 아멜리.아멜리는 주변 사람들에게 행복을 찾아주다가 마침내 자신의 행복에도 눈뜬다.
    “인생은 참 재미있어. 어릴 땐 시간이 안 가다가 갑자기 쉰살이 되지.”
    프랑스 영화 ‘아멜리에’(Le fabuleux destin d’Am lie Poulain·19일
    개봉)를 본 뒤, 영화 속 대사까지 읊고나면, 자연스레 상상할 수 있는
    것은 이제 쉰을 바라보는 감독 장 피에르 주네(Jean-Pierre Jeunet)의
    어린시절이다.

    창가에 앉아 꿈꾸는 듯한 눈으로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소년 주네의 머릿
    속에 명멸했을 그 많은 공상들은 그대로 ‘아멜리에’의 환상적인
    영상으로 되살아났다. 그가 “작품 속 에피소드나 상상의 80% 이상이 내
    어린 시절에 토대한 내용”이라고 밝혔던 것도 무리는 아닌 셈.
    ‘아멜리에’는 가장 사적인 서술로 가장 보편적인 정서를 꽃피워내는
    마술을 보여준다. 그 정서의 이름은 향수이다.

    외롭게 자라난 아멜리(오드리 토투)는 어느날 주변 사람들에게 행복을
    나눠주는 기쁨을 알게 된다. 쓸쓸하게 살아가는 남자와 여자를
    연결해주고 착한 점원을 괴롭히는 가게 주인에게 대신 복수해주던 그는
    마침내 자신의 사랑을 만나면서 가슴 설렌다.

    몽상이란 이런 것이다. 영화 ‘잃어버린 아이들의 도시’에서 “꿈꿀 수
    없을 때 늙는다”고 말했던 주네는 이 영화를 통해 아예 꿈꾸기 자체에
    깊숙히 몰두한다. 말하기보다는 보여주기를 택하며 ‘영화적 화술’이
    어떤 것인지 현시하는 이 작품은 독특한 스타일과 몽상의 힘으로 평범한
    이야기를 환상적인 동화로 바꾸어냈다. 몽상가에겐 시제가
    중요하지 않은 법. 주네는 과거와 현재를 갈마들고 공상과 현실을
    넘나들면서, 관객을 영화적 시간의 블랙홀 속으로 깊숙이 빨아들인다.

    자살하는 물고기부터 베드신에 맞춰 리듬감 있게 달그락거리는
    찻잔들까지, 영화 속 갖가지 모티브와 에피소드들은 하루에도 수십번씩
    상상으로 만리장성을 짓고 허무는 몽상가의 머릿 속을 독특한 영상의
    힘을 빌어 들여다보는 재미를 선사한다. 벽에 걸린 그림 속 동물이 말을
    하고, TV가 입을 열어 아멜리의 사랑에 참견하며, 증명 사진 네 컷이
    서로 논전을 벌이기도 하는 이 영화의 판타지는 양과 질 모두에서 큰
    효과를 발휘한다.

    주네의 영화가 이처럼 밝고 낭만적인 데 놀랄 필요는 없다.
    ‘아멜리에’는 그의 취향과 스타일이 본격적으로 드러난 첫 영화라고 할
    수 있다. 기괴하고 어두운 ‘델리카트슨’이나 ‘잃어버린 아이들의
    도시’는 마르크 카로와의 공동 연출이었고, ‘에일리언 4’는 개성을
    발휘하기 어려운 할리우드 블럭버스터 속편이었기 때문이다.

    프랑스에서만도 800만명 안팎의 관객을 끌어들이며 대히트했던 데는
    배우들도 한 몫을 단단히 했다. 오드리 토투(Audry Tautou)는 단발머리에
    독특한 표정 연기로 만화적인 인물이 얼마나 매력적일 수 있는지
    증명한다. ‘증오’의 감독 마티유 카소비츠(Mathieu Kassovitz)가
    상대역인 귀여운 남자 니노 역을 호연, 연기에도 일가견이 있음을
    보여줬다.

    이 영화에 대해 일부 프랑스 비평가들은 ‘퇴행적’이라며 비난했다.
    죽은 애견을 박제해서라도 옆에 두려는 마들렌, 잊지 않으려 그림을
    그려두는 라파엘, 과거의 추억 때문에 말고기를 먹지 못하는 카페 주인,
    “이제 남은 건 추억이 담긴 낡은 상자 뿐”이라고 말하는 도미닉 등,
    아닌 게 아니라 ‘아멜리에’에는 과거만 바라보며 사는 인물들이
    가득하다. 하지만 극장을 나서는 관객들 입가에 걸려 있을 미소와 가슴
    속 행복의 잔물결을 낳은 영화 속 향수를 퇴행이라는 말로 불러야
    한다면, 까짓 것, 기꺼이 퇴행하고야 말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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