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무림에 숨은 고수 있었네...「와호장룡」

      입력 : 2000.08.25 17:18


      ## ‘음식남녀’의 이안 감독이 처음 만든 ‘진짜배기’ 무협액션 ##


      세상은 와룡과 봉추, 둘 중 하나를 얻으면 천하를 얻을 수 있다는데
      용과 봉황은 깊은 산 속에 틀어박혀 숨어지낸다. 천하를 제패하려는
      야심가 유비는 두 사람을 피비린내 나는 전쟁터로 끌어들이는 데는
      성공하지만 덕분에 제갈량과 방통은 처참한 말로를 맞는다. 영웅의
      최후란 원래 그런 것. ‘비극’은 천재의 한 속성일지도 모를 일이다.

      중국 무협 소설들은 ‘삼국지’의 전통을 이어받아 대부분 제갈량이나
      방통, 관우 같은 영웅상을 그린다. 비극의 대명사 격인 인물들이다.
      그러므로, 엉터리 삼류 무협지가 아닌 다음에야 무협 소설 속 영웅들의
      최후는 대부분 비극적이다. 굳이 목숨을 잃지 않는다 하더라도 대미에
      이르면 영웅은 속세의 쓴맛을 다시 한번 곱씹으며 천박한 욕망이
      횡행하는 강호를 비웃곤 한다. ‘소오강호’는 영웅의 본색인 셈이다.

      유명 무협 소설을 영화로 옮긴 ‘와호장룡’의 주인공 ‘리무바이’도
      웅크리려(와) 하며 숨으려(장) 한다. 사부가 비명에 가자 강호의
      비정함과 덧없음에 진저리를 치고는 속세를 뜨려 한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리무바이를 그냥 내버려 두지 않는다. 때마침 무당파의 보배이며
      천하의 고수만이 진가를 발휘할 수 있는 명검 청명검이 도난 당하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리무바이가 보검을 되찾으려는 과정에서 연인
      ‘수련’과 ‘용’, ‘호’ 등의 등장 인물이 얽히고 설키며 이야기를
      이끌어나간다. 넷은 모두 절정 고수들. 그 가운데에서도 리무바이는
      ‘검의 명가’ 무당파에서도 손꼽히는 고수 중의 고수다. 하지만
      영웅은 항상 그렇듯 마지막에 쓰러진다.

      이안 감독의 신작이 무협 영화라는 소식은 잠시 영화 언론 관계자들을
      아연케 했을 것이다. ‘음식남녀’를 ‘결혼 피로연’ ‘아이스 스톰’
      ‘센스 센스빌리티’ 같은 드라마를 주로 만들어왔던 터라 무협 영화는
      이안에게 전혀 생소한 장르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완성된
      ‘와호장룡’은 무협 영화의 진정한 전통을 탁월하게 영상화하고
      있다.

      ‘와호장룡’은 고수들이 바람을 가르고 허공을 치솟는 스펙터클을
      유감없이, 아니 한 단계 끌어올려 보여주면서도 무협 영화만이 가지는
      냉소적이며 초월적인 철학과 비극성을 고스란히 느끼게 한다. 액션과
      철학, 어느 한쪽에 지나치게 치우쳐 절뚝거리지 않는 걸작 무협
      영화로 완성된 것이다. 이런 경지는 평생 무협 영화만을 고집했던
      호금전, 장철 같은 선배 대가들도 쉽사리 이르지 못했던 것.
      ‘와호장룡’의 완성도는 놀랍기만 하다. 그러고 보면 이안
      감독이야말로 그동안 무협 영화계라는 강호에 출두하지 않고 기회를
      엿보던 와호장룡이었는지도 모른다.

      ‘와호장룡’의 스펙터클은 첫장면부터 빛을 발한다. 청명검을
      도둑질해 달아나는 용을 수련이 뒤쫓는 장면은 손에 땀을 쥐게 한다.
      뒤에 펼쳐지는 대나무 숲 액션 신은 한술 더 뜬다. 배우들이
      피아노줄에 매달린 채 대나무 숲 60피트 상공에서 결투를 벌이는데
      가히 와이어 액션의 절정이라 할 만하다. 우리나라 영화
      ‘비천무’에서도 솜씨를 발휘한 원화평 무술감독(성룡 주연의
      ‘취권’을 감독하기도 했다)의 공력을 느끼게 하는 장면이다.

      이안 감독은 ‘타임’ 지와의 인터뷰에서 촬영 소감을 묻는 질문에
      “섹시한 일이라고 느꼈다. 누구도 시도하지 않은 일이니까. 하지만
      찍고보니 왜 모두들 시도하지 않았는지 알 만 하다. 불가능하니까”라고
      대답했다는데 이 대나무 숲 장면을 보면 그 대답이 이해가 된다(원래
      대나무 숲 격투 장면은 호금전의 걸작 무협 영화 ‘협녀’에 등장한다.
      ‘와호장룡’의 장면은 ‘협녀’에서 모티브를 따온 듯하다).

      거개의 액션 영화들이 삼류 취급 받는 것은 치고 받는 겉모습에
      치중한 나머지 속알맹이 채우는 데는 인색했기 때문이다. 수퍼맨
      같은 주인공이 얼토당토 않은 줄거리에 따라 이리 뛰고 저리 뛴다면
      삼류란 비난을 들어도 할 말이 없겠다.

      하지만 ‘와호장룡’은 그런 삼류 액션 영화와는 격이 다르다. 이안
      감독은 리무바이와 수련에게 사색적인 캐릭터를, 용과 호에게는
      욕망에 사로잡힌 캐릭터를 부여한 뒤 이를 스펙터클 사이사이에서
      부각시킨다. 그래서 씨줄과 날줄이 멋지게 어울린 ‘진짜배기’ 액션
      영화를 한 편 만들어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액션 영화가 다시
      유행을 타고 있다. 액션 사이사이를 무엇으로 이을지, 또는 드라마
      사이사이에 어떻게 액션을 넣어야 할지 고민된다면 ‘와호장룡’을
      교과서 삼아도 부족함이 없겠다.

      (김유준 영화평론가/ yjkim@digi-ca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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