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을 깬 혁신… 대학이 변화하고 있다

틀을 깬 혁신… 대학이 변화하고 있다

입력 2019.03.20 03:01

기술이 급변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대비하기 위해 대학 교육 혁신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미국, 싱가포르, 스위스 등 글로벌 대학들은 수백년간 이어온 틀을 과감히 깨고 혁신을 거듭하고 있다. 별도 캠퍼스 없이 학생들을 전 세계 7개국 산업 현장과 기관에서 경험하며 배우게 하는 '미네르바 스쿨'은 글로벌 교육 혁신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최근 한국에서도 서울대와 미네르바 스쿨을 모두 합격한 뒤 고민하는 학생까지 나왔다. 미네르바 스쿨뿐 아니라, 이제 전 세계 명문대 수업을 온라인으로 언제 어디서나 듣고 학위를 받는 '무크(MOOC·온라인 공개 강좌) 시대'가 활짝 열렸다. 글로벌 대학 혁신이 가속화될수록, 국경을 넘나들며 벌이는 학생 유치 경쟁도 더 치열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우리나라 대학들도 변화에 나선 곳이 많다. 인공지능(AI)이나 소프트웨어 교육을 강화하는 것이 큰 흐름이다. 성균관대는 2016년부터 모든 신입생에게 소프트웨어를 가르치며, 올해 '인공지능(AI) 대학원'에 선정돼 AI 전문 인력을 본격적으로 양성한다. 건국대는 학교가 짜준 수업이 아니라 학생 스스로 과제를 설계하고 학점을 받는 '드림학기제'를 운영한다. 단국대는 국내 최초 'AI 캠퍼스'를 만드는 작업에 나섰고, 숭실대는 융합 인재를 키우기 위해 'DIY 자기 설계융합 전공'을 만들었다.

앞으로 이 대학들이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더 필요한 점은 무엇일까. 왜 우리는 혁신해야 하는가. 한국에도 '미네르바 스쿨'이 나올 수 있을까. 고등교육 현장의 전문가들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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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경 한양대 과학기술정책과 교수

현재 한국은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교과서 가지고 정해진 교수에게 정해진 커리큘럼을 배우는 ‘3차산업 시대 교육’에 머물러 있다. 미네르바 스쿨의 혁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igital Transformation)’이다. 내가 원할 때, 언제, 어디서나 접할 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4차산업에 맞는 교육이다. 요즘 학생들은 교수가 아니라 유튜브, 위키피디아, 구글에서 지식을 배운다. 이에 맞게 대학도 모든 것을 바꿔야 한다. 프랑스 기업가가 만든 IT 교육기관 ‘에콜 42’는 교수가 한 명도 없고, 학생들끼리 코딩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배운다. 졸업생들은 페이스북, 구글에 취업한다. 우리는 이런 변화를 아직 저항하고 있다. 누군가 답을 알고 있는 어려운 문제에 모두가 매달릴 필요가 없는데도, 여전히 답이 정해진 문제를 잘 푸는 사람을 키운다. 세상을 바꾸는 위대한 질문을 하는 사람을 길러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인공지능을 이긴다. 이미 구글, 애플 같은 기업은 사람 뽑을 때 대학 졸업장을 안 보고, 문제 해결 능력을 본다. 기존 지식을 잘 공부해 대학 졸업장 따는 게 필요 없다는 걸 테크 기업들은 잘 알고 있다. 국가가 변하기 위해선 산업과 대학이 변해야 한다.

◇김대식 카이스트 전기·전자공학과 교수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가 대학 교육에 대한 고민이 많다. 과거엔 새로운 정보가 대학이라는 특정 장소에 모였다. 하지만 이제 사회에 너무 많은 정보가 있다. 대학 강의와 똑같거나 더 좋은 강의가 유튜브에 있다. 학생들이 집에서 강의 듣고 학교에 와선 프로젝트를 하는 게 맞는다. 그런 의미에서 미네르바 스쿨은 혁신적인 교육 모델이다. 문제는 이런 혁신적 수업을 대학보다는 중·고교에서 해야 한다는 점이다. 독일은 초등학생 때부터 지식은 알아서 배우게 하고 학교에선 토론을 시킨다. 우리나라 학생들은 어릴 때 그런 교육을 안 받으니까 커서 세계 학회에 나가면 토론하고 발표하는 데 밀린다. 이스라엘은 요즘 초등학생한테 스타트업 차리는 것을 가르친다고 한다. 거대한 게 아니라 오렌지 주스 만들어 길거리에서 파는 식으로 현실적인 기업가 정신을 가르치는 것이다. 선진국들이 인재를 키우는 데 굉장히 앞서가고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미네르바 스쿨의 핵심도 프로젝트 수업이고, 프로젝트 수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협동심이다. 그런 교육을 하려면 평가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점수로 학생들을 한 줄 세우는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그러려면 사회 전반적으로 신뢰가 필요한데, 우리는 그 점이 매우 부족하다. 지금 우리 교육의 가장 큰 문제는 시험 점수 높고 좋은 대학 가는 학생들은 키워도 세계적 인재는 못 키운다는 점이다. 세계적 인재가 없으면 나라가 발전을 못 한다. 이대로 멈추면 우리나라는 국제 경쟁 사회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미네르바 스쿨을 무작정 베낄 게 아니라, 한국 대학들이 왜 사회적 수요에 부응을 못 하는지 먼저 분석해 우리 식의 교육 혁신을 해야 한다. 골프 선수 박인비에게 배워야 한다. 박인비 선수의 체형은 전형적인 골프 선수 체형이 아니다. 골프 선수는 회전을 하려면 허리가 가늘어야 하는데, 박인비는 그렇지 않다. 그런데도 메이저 대회를 석권하고, ‘명예의 전당’에 들어갔다. 박인비는 골프 선수들의 표준적 스윙이 아닌, 그만의 스윙을 만들었다. 그 스윙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둔 것이다. 우리나라가 바로 박인비처럼 이상한 체형을 갖고 있다고 본다. 혈연·학연·지연, 과도한 평등의식 등 우리가 다른 나라랑 다른 점은 수없이 많고 같은 점은 찾기 힘들다. 교육에도 남의 것을 잔뜩 심으면 안 맞는다. 우리만의 교육 혁신이 필요하다. 우리는 교육 외적인 데에는 관심이 많으면서 정작 교육 얘긴 안 한다. 융합, 창의성, 벤처를 얘기하면서, 정작 학생한테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지 얘기하는 사람이 없다. 대학 혁신을 하려면 학교가 배우고 가르치는 데 집중하게 해야 한다.

◇이주호 한국개발원(KDI) 교수

세계 교육 현장은 200년 전 만들어진 교육 모델에서 탈바꿈하고 있다. 초·중·고 교육은 과거 대량 생산 시스템에 맞는 인재를 키우는 교육에서 개별화, 맞춤형 교육으로 나아가고 있다. 대학도 소수 엘리트를 양성하는 게 아니라, 모든 아이를 성공시키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우리나라는 여전히 새로운 시도를 할 힘과 자율이 부족하다. 대학이 온라인 강의를 20% 이상 못 하게 하는 규제가 대표적이다. 미국 애리조나주립대 등 혁신하는 대학들은 대상에 따라 맞춤 교육을 한다. 온·오프라인 경계를 허물었다. 이제 우리나라도 낡은 규제를 허무는 것을 본격적으로 논의할 때가 됐다. 미국에 있는 외국인 유학생이 100만명이고, 영국은 50만명, 호주는 20만명이다. 개도국의 폭발하는 대학 교육 수요를 이 나라들은 흡수하고 있다. 이런 세계의 교육 변화에 한국이 고립되면 안 된다.

◇임진혁 포스텍 특임교수

우리는 기업 규제는 혁파해야 한다고 하면서, 교육엔 여전히 규제가 많다. 미네르바뿐 아니라 조지아텍, 유펜 등 미국 대학은 100% 온라인 석사 과정을 운영하지만 우리는 못 한다. 기업에서 온라인 강의를 열어달라는 요청이 쏟아진다. 기술이 하도 빨리 변하니까 직원들을 훈련시키고 싶은 거다. 대학에 몇 개월씩 파견해 연수시키면 비용이 많이 들고 휴직도 해야 해서 쉽지 않다. 그래서 온라인 강의를 원하는데, 한국 대학은 못 하니 미국 대학 과정을 이용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미국 조지아텍 컴퓨터 과학 학과에서 입학할 땐 정규 과정 학생들 성적이 높았지만 졸업할 땐 온라인으로 수업 들은 직장인들이 정규 학생들을 따라잡았다고 한다. 온라인 강의 질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제 간판보다 문제 해결 능력이 중요하다. 4차 산업혁명은 누구에게나 영향을 미치고, 이를 헤쳐나가려면 교육을 받아야 한다. 질 좋은 교육을 많은 사람이 누릴 수 있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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