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저가 커피로 20대에 370억 대박 낸 흙수저 절친

  • 글 jobsN 송영조

    입력 : 2021.04.06 16:35 | 수정 : 2021.04.09 19:16


    커피 프랜차이즈 더벤티
    20대 때 막일·군복무도 함께해
    최준경·박수암 대표

    1996년 봄. 부산의 한 초등학교에 8살배기 두 소년이 나란히 입학했다. 방과 후 축구하면서 친해진 둘은 같은 고등학교를 나와 20대 초반 사회생활까지 함께 시작했다. 군 시절에는 의무경찰로 같은 경찰서에서 복무하기도 했다. 친구로 지낸지 25년이 지난 지금 두 사람은 연 매출 370억원 규모의 회사를 이끄는 동업자로 지낸다. 커피 프랜차이즈 더벤티의 최준경·박수암(33) 대표를 만났다.

    서울 강남 더벤티 사옥에서 만난 박수암 대표(왼쪽)와 최준경 대표. /jobsN
    ◇대학 자퇴 후 함께 고깃집 알바하며 창업 꿈꿔

    -초등학생 때부터 알고 지냈다고요.

    최) “부산 금정초등학교 1학년 때 처음 만났어요. 박 대표는 또래 중에서 키가 가장 커 눈에 띄는 친구였어요. 축구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친해졌죠. 중학교는 따로 다녔지만, 계속 알고 지냈어요. 동래원예고등학교에 같이 입학하면서 관계가 더 돈독해졌습니다. 졸업을 앞두고 대학에 갈지, 바로 돈을 벌어야 할지 고민했어요. 결국 둘 다 대학에 입학했는데, 머릿속으로 그렸던 대학 생활과 많이 다르더라고요. 그래서 자퇴를 했습니다. 고깃집에서 함께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돈을 벌었어요. 우리도 나중에 돈을 많이 벌면 고깃집을 차려보자는 이야기를 20대 초반에 했죠. 입대 4~5개월을 앞두고는 둘이서 건물 바닥과 외벽에 대리석을 까는 막일을 했습니다. 집 사정이 넉넉하지 않아 계속 돈을 벌어야 했거든요.” 

    박) “우연찮게 군생활까지 함께 했어요. 둘 다 의경 출신인데, 제가 최 대표보다 일주일 먼저 입대했습니다. 서로 다른 경찰서에서 복무했는데, 체제 개편으로 서에서 근무하던 의경들이 근무지를 옮겨야 했어요. 최 대표가 있던 부산 북부경찰서에 한 기수 선임으로 갔어요. 어쩌다 군생활까지 함께한 사이가 됐습니다. 사실 저희 모두 잠시 경찰이라는 꿈을 꾼 적이 있어요. 의무경찰을 지원한 것도 시험 가산점을 주기 때문이었거든요. 말년 휴가를 나와서도 대리석을 까는 막일을 했는데, 돈을 벌어서 경찰학원에 다니려 했죠. 저희 집도 형편이 넉넉한 편은 아니었습니다.”

    -커피 업계에 발을 들인 계기는 뭡니까.

    박) “대리석을 까는 일을 하다가 손가락이 잘리는 사고가 났어요. 그때 최 대표도 있었는데요. 수술하고 회복할 때까지 최 대표가 옆에 있어줬어요. 그러다 최 대표가 먼저 커피 회사에 취직을 했습니다. 저는 산재보상을 받긴 했지만, 계속 돈을 벌어야 할 상황이었어요. 손을 다쳤어도 할 수 있는 일 중 하나가 커피숍 아르바이트였습니다. 그때부터 커피에 관해 배우기 시작했어요. 제가 일하던 카페의 커피 머신에 문제가 생기면 최 대표가 와서 기계를 봐주기도 했죠. 

    지금의 더벤티를 있게 만든 부산대 1호점. /더벤티 제공
    이때가 2012년 초였는데, 거리에 카페가 정말 많았어요. 어딜 가도 바리스타를 볼 수 있었죠. 그런데 커피 기계를 다룰 수 있는 사람은 보기 드물었습니다. 최 대표가 커피 머신 쪽으로 기술이 있으면 활용도가 높을 것이란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바리스타가 아무리 커피를 잘 만들어도, 맛있는 커피를 만들 머신 전문가가 없으면 안되니까요. 마침 최 대표가 일하던 회사에서 기계 파트에서 일할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그렇게 한 회사에서 일하게 됐어요. 최 대표는 세일즈 파트에서, 저는 기계 파트에서 근무했어요.”

    ◇폐업 준비하던 카페 ‘대박’ 터뜨려 프랜차이즈 시작

    -같은 회사에 다니다 만 25세에 공동 창업했습니다.

    최) “업무를 손에 익히고 나서 보니 저와 박 대표가 힘을 합치면 한 회사를 창업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침 커피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던 시기였습니다. 둘이 의기투합해 사업체를 꾸리기로 하고 2013년 말 회사를 나왔어요. 처음부터 커피 프랜차이즈를 만들 생각은 아니었습니다. 개인 카페 컨설팅으로 시작했어요. 메뉴 개발이나 커피 머신 세팅, 기기 관리 등 매장을 처음 운영하는 분들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했습니다.”

    -매장 컨설팅을 하다가 프랜차이즈를 열었다는 이야기인가요.

    최) “개인 커피숍 10곳 정도 컨설팅을 했어요. 그중 부산대 앞에서 카페를 운영한 사장님이 예전에 레스토랑에서 같이 일하던 직원이었습니다. 퇴사하고 카페 창업을 했는데, 생각보다 매출이 잘 나오지 않아 가게를 정리하려 했어요. 기기를 중고로 처분해달라고 하더라고요. 매장에 가보니 입지가 나쁜 것도 아니고, 가게 평수도 컸어요. 대학교 앞이라는 장점도 있었습니다. 이대로 가게를 접긴 아쉬워서 점주분께 역으로 제안을 했어요. 우리에게 아이디어가 있으니, 매장 콘셉트를 바꿔서 다시 시작해보는 건 어떻겠냐고 했죠. 

    폐업을 준비하던 점주님의 마음을 돌리는 건 쉽지 않았어요. 그래서 재개장에 들어가는 비용 절반을 투자할 테니, 우리를 확실히 믿고 따라와 달라고 했습니다. 저희가 창업할 때 쓴 돈이 총 7000만원이었어요. 사무실 보증금 2000만원에 비품 쌓아 둔다고 1000만원 쓰고, 차량 구입비 등에 손에 쥐고 있던 돈을 다 투자한 상황이었어요. 수중에 돈이 없는데도 어떻게든 매장을 살리고 싶었습니다. 될 것 같았거든요. 끈질기게 설득해 점주님의 마음을 돌리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 매장이 바로 지금의 더벤티 1호점이에요. 당시 개발한 콘셉트를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죠. 처음에는 프랜차이즈화할 생각도 안했어요. 그저 가게를 살리고 싶어서 컨설팅을 시작한 게 여기까지 오게 된 겁니다.”

    창업 초기 최 대표의 모습. /더벤티 제공
    -당시 손님들의 반응이 어땠습니까.

    박) “오픈 첫날에는 반응이 없었어요. 홍보나 마케팅도 할 줄 몰랐으니까요. 처음엔 손님이 두어 명씩 왔는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덕을 봤죠. 매장 사진이 SNS에서 화제를 모으면서 재개장 10일 만에 20만원 수준이던 하루 매출이 200만원으로 10배 올랐어요. 오픈부터 마감 때까지 매장 앞에 손님들이 줄이 섰죠. 당시엔 대형 커피 프랜차이즈가 대세였는데, 작은 사이즈 아메리카노가 3700~3800원이었어요. 우리는 24온스(680ml) 대용량 아메리카노를 1500원에 팔았습니다. 합리적인 가격에 커피를 즐기고 싶어 하던 소비자들이 몰렸어요. 1호점이 말 그대로 ‘대박’이 나자 창업 문의가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프랜차이즈 사업을 준비했어요.”

    -1호점 성공 이후 7년 만에 600호점까지 열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대용량 중저가 커피 프랜차이즈가 없었어요. 프랜차이즈화를 도울 분을 가장 먼저 찾았습니다. 단순히 가게만 만들어 준다고 되는 일이 아니니까요. 컨설팅을 받아 상표를 출원하고 가맹계약서를 만들면서 차근차근 준비했어요. 2014년에 17개 매장이 문을 열었고요. 2015년에는 130개가 더 생겼습니다. 그때부터 부산에 소문이 나기 시작했어요. 경남이나 경북에서까지 개점 문의가 왔습니다. 지난 3월30일 서울 화곡역점에 600호점을 오픈했어요. 2020년 7월 500호점을 연지 8개월 만의 성과입니다. 지역별로 매장이 가장 많은 곳은 부산·경남(35~40%)입니다. 수도권 분포도는 약 30%예요.”

    jobsN
    ◇“저렴하다고 전부 아냐···맛으로 승부할 것”

    -매출은 얼마나 나오나요.

    박) “본사와 가맹점 매출이 따로 있는데요. 본사 매출이 2020년 기준 약 370억원입니다. 부산과 서울에서 직원 85명이 근무하고 있어요. 올해는 매출이 600억원 정도 나올 것 같아요. 매장은 직영점이 5개고, 나머지는 다 가맹점이에요. 출점 제한 등이 걸려 있어 본사가 꼭 운영해야 하는 곳이면 직영점을 열죠.”

    -두 사람이 함께 회사를 이끄는 동안 부딪히거나 싸운 적은 없나요.

    최) “저는 상품 개발·마케팅·교육 등 관리 쪽을 맡고 있어요. 박 대표는 인테리어·매장 관리·점포 개설 등을 담당합니다. 각자 성향에 맞는 일을 하고 있어요. 제가 밖으로 나가 일을 벌이면 박 대표님은 뒤에서 지원해주는 역할을 해요. 이런저런 사고도 많이 치고 다니는데, 한번도 불만을 표현한 적이 없어요. 그만큼 서로 믿기 때문이죠. 그래서 저는 더 열심히 회사를 키우는 데 집중할 수 있어요. 에피소드가 있으면 좋겠지만, 갈등이라고 부를 만한 사건이 없었습니다.”

    박) “그동안 회사를 운영하면서 큰 고난을 겪은 적이 없었습니다. 다만 작년 찾아온 코로나19 사태가 이렇게 무섭게 다가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어요. 저희는 테이크아웃으로 운영하는 매장이 90%가 넘어 그나마 다른 프랜차이즈보다는 타격이 적었어요. 그래도 재택근무를 하는 회사가 늘고 거리에 사람들이 나오지 않으니 사 먹을 분이 없잖아요. 어떻게 점주 분들을 도울까 고민하다가 3차에 걸쳐 로열티 16만5000원을 전액 면제하고, 물류비 20%를 지원하는 등의 지원책을 내놨어요. 오프라인에서 빠진 매출을 배달 시장에서 메꿀 수 있게 본사 부담으로 가맹점 지원도 했습니다.”

    25년을 함께한 최 대표와 박 대표. /더벤티 제공
    -앞으로 계획이나 목표는요.

    최) “앞으로 3년 안에 국내 점포 확장은 마무리할 것 같아요. 원래 2021년부터 외국 진출 준비를 하려 했는데, 코로나19 사태로 미뤄졌어요. 외국으로 나갈 수 있는 길이 열리면 2022년부터 본격적으로 해외 시장을 공략할 생각입니다. 우선 베트남이나 필리핀 등 동남아시아 국가부터 진출할 생각이에요. 더벤티라는 브랜드로 더 많은 소비자에게 다가갈 방법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박) “해외 진출은 아직은 시장 조사 단계예요. 평소에는 더벤티를 더욱 가치 있는 커피 프랜차이즈로 만들기 위한 고민을 합니다. 사이즈 대비 커피 가격이 저렴하다고 무조건 좋은 브랜드는 아니니까요. 이제 커피 양으로 승부할 지점은 지났다고 봐요. 그래서 메뉴 개편이나 새로운 음료를 만드는 데도 게을리하지 않고 있어요. 대용량 커피로 성공해놓고 14온스짜리 하프벤티 사이즈 커피를 내놓는 것도 이런 노력으로 봐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언젠가는 더벤티가 가성비뿐 아니라 커피 맛으로도 최고라는 말을 들을 수 있게 만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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