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제 먹방’에 이어…이젠 눈 가리고 운전까지

유튜브 속 각종 '챌린지' 광풍
조회수 경쟁으로 자극적인 콘텐츠 범람
뚜렷한 제재는 없어

영상 콘텐츠 시대. 그 중심에 유튜브가 있다. 2017년 2월 유튜브는 전세계 사람들이 하루 10억 시간 이상 동영상을 본다고 밝혔다. 대학내일20대연구소가 2018년 9월 발표한 국내 15~34세 800여명 대상 유튜브 영상 이용 행태에 관한 보고서를 보면 하루 평균 2시간 유튜브를 시청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업 유튜브뿐만 아니라 연예인과 정치인들까지 뛰어들면서 경쟁이 심화됐다. 다양한 콘텐츠를 다룬다는 장점은 있다. 하지만 시청자의 클릭을 간택 받기 위한 조회수 경쟁 때문에 자극적인 영상도 늘고 있다. 급기야 목숨까지 내건다. 하지만 콘텐츠 블랙홀 속에서 이런 영상에 대한 뚜렷한 제재 조치는 없다.

◇위험천만 유튜버들

최근 미국에서 일어난 ‘버드박스 챌린지’ 열풍이 대표적이다. 버드박스는 원래 2018년 12월 21일에 넷플릭스가 공개한 스릴러 영화를 말한다. 어느 날 미지의 존재를 본 사람들이 자살을 시도한다. 주인공 말로리(산드라 블록 역)는 두 아이와 함께 눈을 안대로 가린 채 안전한 곳을 찾아 떠난다. 산을 넘고 노를 저을 때도 안대를 벗지 않는다.

유튜버들이 이를 모방한 영상을 ‘버드박스 챌린지’라 부른다. 유튜브에서 ‘버드박스(Bird Box)’를 검색해 스크롤이 내리면 끝도 없이 영상이 보인다. 단순히 눈을 감고 음식을 먹는다거나 화장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유튜버 모건 아담스(Morgan Adams)는 24시간 동안 눈을 가린 채 지내는 버드박스 챌린지 영상을 올렸다. 차에 탈 때도 드라이브스루 매장에서 음식을 주문해 받을 때도 안대를 하고 있다. 그러다 무빙워크를 타다 넘어지기도 한다. 2018년 12월 30일에 올린 이 영상은 조회수가 320만건을 넘었다.

다른 영상을 보면 모건의 버드박스 챌린지는 평범한 수준이다. 알릭스 트레이거(Alix Traeger)는 눈을 가린 채 스테이크를 굽는다. 달궈진 프라이팬에 손이 닿을까 조마조마하다. 결국엔 연기가 심하게 나 경보음이 울려서야 안대를 벗는다. 유타주 레이턴 경찰청 트위터에는 버드박스 챌린지를 하던 운전자가 사고를 냈다는 글이 올라왔다.

이런 위험천만한 챌린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조회수에 목맨 유튜버들이 너도나도 찍어 올린 엽기적인 영상은 이전부터 사회적 문제를 일으켰다. 기절할 때까지 숨을 참는 패스 아웃 챌린지(Pass out Challenge)는 유튜브가 등장하기 전부터 청소년들 사이에서 유행한 게임이다. 하지만 유튜브가 이런 위험한 행동을 과시하기 좋은 장소를 제공했다. 2017년 미국에선 워싱턴포스트 등 여러 언론에서 패스 아웃 챌린지가 학생들의 목숨을 앗아간 사건을 보도했다.

최근까지 ‘세제 먹방’ 영상이 유튜브의 골칫거리였다. ‘타이드 팟 챌린지(Tide pot challenge)’로 불리는 영상이다. 타이드 팟은 P&G에서 출시한 캡슐 형태 세탁세제다. 세탁 세제와 섬유 유연제 성분을 압축해 빨래할 때마다 각각 분량대로 챙겨 넣어야 하는 번거로움을 없앴다.

알록달록한 색감이 언뜻 보면 눈깔사탕을 떠올리게 한다. ‘먹어보고 싶게 생긴’ 모습에 2012년 출시 이후 영유아와 치매 환자들이 타이드 팟을 삼켜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2017년부터는 몇몇 유튜버가 타이드 팟을 입에 물고 터트리는 챌린지를 시작했다. 첨엔 캡슐을 터트리고 도로 뱉었지만 나중에는 일부러 세제를 삼키는 이들이 생겼다.

삼키지 않는다고 해서 건강에 무해한 것도 아니다. 의학 전문 유튜브 채널 Chubbyemu를 운영하는 의사 버나드(Bernard)는 "세제가 점막에 닿으면 액화 괴사를 일으킨다"며 “1초 안에 식도 내벽이 타들어간다”고 했다. 미국 비영리 소비자 평가 전문지 ‘컨슈머리포트’는 “에탄올, 과산화수소 등 여러 화학물이 혼합돼 있다"며 "입과 위를 태울 수 있다"고 했다. 미 독극물통제센터협회(AAPCC)도 “독성물질이 중요 장기와 뇌·중추 신경계로 이동해 혼수상태 또는 죽음에 이른다"고 경고했다.

더 앞선 2014년에는 온몸에 알코올을 바르고 불을 질러 버티는 ‘화재 챌린지’로 인한 사고도 일어났다. CBS 뉴스는 2014년 “남서부 캘리포니아에 사는 16세 소년이 스스로 몸에 불을 붙였다가 큰 화상을 입었다”고 보도했다. 소년은 네일 리무버를 알코올 대용으로 삼았다.

자극적이고 엽기적인 영상들은 청소년이 쉽게 볼 수 있다. 또래 사이에서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강한 청소년들은 따라 하고 싶은 유혹에 빠진다. AAPCC는 타이드 팟 챌린지가 유행하며 유독 물질을 섭취하는 청소년 수가 크게 늘었다고 밝혔다. 2018년 4월 AAPCC가 발표한 자료를 보면 13세에서 19세 청소년들의 세제 관련 독극물 신고는 2016년 39건, 2017년 53건에 불과했다. 하지만 2018년 1~3월 불과 3개월간 고의적으로 세제를 삼킨 청소년 사례는 215건에 달했다.

◇영향력, TV방송 버금가는데

논란이 이어지자 유튜브는 최근 위험한 콘텐츠에 대한 정책을 업데이트했다. 정책에서 유튜브는 ‘폭력을 조장하는 내용 또는 심각한 상해나 사망의 위험을 내포하는 위험하거나 불법적인 행위를 독려하는 내용을 제한’하기로 했다. 다만 기절 놀이를 다룬 뉴스 콘텐츠처럼 교육이나 기록, 예술·과학 목적으로 한 콘텐츠는 예외다.

문제는 제재수단이 마땅하지 않다는 점이다. 유튜브 특성상 누구나 영상을 쉽게 올리고, 로그인 없이도 영상을 볼 수 있다. 유튜브가 유해한 영상을 차단했을 때는 이미 문제 영상을 많은 사람들이 보고 공유한 후다. 국내 역시 방송 콘텐츠를 심의·규제하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개입한다 해도 쉽지 않다. 유튜브가 해외 사업자여서 영상을 삭제하라는 명령을 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대신 KT, SKT, LGU+ 같은 통신사에 차단 명령을 내릴 순 있다.

유튜브의 영향력은 TV방송 못지않다. 어쩌면 방송보다 더한 파급력을 지녔다. 미국에서는 이미 5년전 유튜버의 인기가 유명 연예인을 제쳤다. 미국 잡지 '버라이어티'가 2014년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제일 좋아하는 연예인’을 묻는 조사에서 상위 6위까지가 유튜버였다. 테일러 스위프트, 조니 뎁 등 내로라하는 연예인을 제쳤다. 한국에서도 추세는 같다. 교육부와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2018년 12월 발표한 초·중등 진로교육 현황조사를 보면 유튜버가 초등학생 희망 직업 5위에 올랐다. 유튜브·아프리카TV 같은 개인 방송을 모방한 방송 프로그램이 등장한 지 오래다.

이런 유튜브에 마땅한 제재수단이 없다는 사실을 두고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2018년 만 13세에서 18세 중·고등학생 105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어린이·청소년 인터넷 개인 방송 이용실태'를 보면 응답자의 76.3%는 “부적절한 언어와 폭력성 등이 드러나는 이른바 '유해 콘텐츠'의 규제에 동의한다”고 답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