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여관방에 버려졌던 3남매 중 1명이었습니다”

  • 글 jobsN 배미래 인턴

    입력 : 2019.02.08 09:06

    모두가 바쁘게 지나가는 홍대 입구 3번 출구. 그곳을 6년째 지키고 있는 사람이 있다. 바로 ‘빅이슈’ 판매원 임상철(52) 씨다. 빅이슈는 홈리스의 자활을 돕기 위해 홈리스를 잡지 판매원으로 채용한다. 상철씨도 그 중 한 명이다. 하지만 그는 조금 특별하다. 상철씨는 책을 쓴 작가다.

    그림을 좋아했던 그는 자신의 삶을 그림에 담아 잡지 뒤편에 끼워 팔았다. 힘들었던 보육원 생활, 어릴적 실명한 오른쪽 눈, 18년간의 홈리스 생활, 그리고 조각가가 되고 싶은 꿈까지. 그것이 입소문을 탔다. 시민 모금과 출판사의 도움으로 그간 그린 엽서들을 엮은 책을 냈다. 초판 2000부에 이어 2주 만에 2쇄를 찍었다. 교보문고가 이달의 추천도서, 화제의 신간으로, YES24가 편집자 추천도서, MD 추천도서로 선정했다. 교보문고 사회 정치 베스트 28위에 오르기도 했다. 거리에서의 52년 인생을 담은 ‘오늘, 내일, 모레 정도의 삶’의 저자 임상철씨는 오늘도 홍대입구 3번출구를 지키고 있다.

    임상철 씨/jobsN 제공

    -어쩌다 보육원에 들어갔는지

    “6살 때 어머니께서 병으로 돌아가셨다. 그리고 아버지와 삼 남매가 함께 살았는데 생활고에 시달렸다.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여관에 삼 남매가 버려져있었다. 여동생은 다른 보육원으로 갔고 나와 형은 같은 곳으로 갔다. 그 후론 아버지를 한 번도 볼 수 없었다. 어린 마음에 원망스럽기도 했다. 5년 전 주민등록 등본을 보다가 아버지가 돌아가신 걸 확인했다.”

    -보육원 생활이 힘들지는 않았나

    “많이 힘들었다. 우선 어린 나이에 세상에 혼자 남겨졌다는 공포가 가장 컸다. 나이 많은 형들이 텃세를 부리기도 하고 폭력을 가하기도 했다. 밥을 흘리고 먹었다고 단체 기합을 받은 적도 있다. 학교에 싸가는 급식은 보리밥에 김치와 단무지였다. 참기름이 먹고 싶어 참기름인 줄 알고 밥을 비벼 먹었는데 식용 기름이 아니었던 적도 있다. 그냥 어떻게 극복했다기 보다 참다 보니 시간이 흘렀다는 게 맞는 것 같다. 도망가는 사람도 많았고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도망가봤자 갈 곳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라는 생각으로 그저 참았다. 견뎠다.”

    임상철 씨 그림/본인제공

    -어쩌다 홈리스 생활을 한건지

    “중학교를 졸업하고 먼저 서울로 간 형을 따라 상경했다. 형이 경기도의 한 가구 공장에서 일하고 있어서 그곳에 들어갔다. 생활은 공장 기숙사에서 했다. 6개월 정도 일하고 조형물이나 장식품 만드는 회사들을 찾아 들어갔다. 조각과 관련 있는 일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97년 IMF가 터지기 전까지 7~8군데 정도에서 일했다.

    IMF가 터지자 일자리를 구할 수가 없었다. 가방 하나 들고 인력소를 돌아다녔다. 일산, 성남, 오산, 천안, 수원, 평택 등 일거리를 찾아 정말 여러 군데의 인력소를 찾아다녔다. 인력소에서 받은 일을 하면서 고시원, 찜질방, PC방을 전전했다. 돈이 없으면 길거리에서 자기도 했다. 길에서 자고 있으면 누군가 주머니를 뒤지기도 하고 이유 없이 폭행하기도 했다.

    30대 중반쯤 벽돌을 지고 올라가다가 3층 높이에서 떨어진 적이 있다. 그 사고로 다리를 다쳤는데 다리만 다친 게 다행이라 생각 들 정도로 아찔했다. 3개월 정도 병원에 입원했다. 퇴원 후에도 다리가 아파 1년 정도 절뚝거렸다. 다리 때문에 인력소에서 일을 못 받기도 했다.”

    본인제공

    -잡지에 그림을 끼울 생각은 어떻게 했나

    “홈리스 생활을 하다가 2013년 홈리스의 자립을 돕는 사회적 기업인 ‘빅이슈’의 잡지 판매원 일을 시작했다. 잡지 판매 수익의 50%를 나눠주고 일정 기간 일해 보증금을 마련하면 임대 주택을 빌려준다.

    잡지를 팔면서 혹시 홈리스라는 인식 때문에 사람들이 다가오는 것을 꺼려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됐다. 친근감을 주고 싶어 나를 알리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자화상을 그리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글을 써 엽서처럼 끼워 넣어 팔았다.”

    -엽서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어땠는지

    “신기해하고 재밌어했다. 한 번은 2~3년 정도 꾸준히 잡지를 사던 한 분이 당신에 대해 소개해줘서 고맙다며 말을 건넸다. 한국에서 건축 일을 하는 호주 사람이었다. 내가 그림을 그리는 게 의미 없는 일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말을 들은 뒤로 내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자세히 엽서에 담았다.

    매달 두 번 정도 꾸준히 잡지를 사 가던 한 출판사 직원이 내 엽서를 모아 책으로 내면 어떻겠냐고 2016년 제안을 했다. 그간 그렸던 것들과 그 후 2년간 엽서를 모아 책으로 엮었다. 2018년 11월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인 ‘텀블벅’에 올려 후원금을 마련했다. 2019년 1월 14일 정식 발간을 했다.”

    본인제공

    -조각가를 꿈꾸는 이유는?

    “중학교 미술시간 숙제로 부조를 만들었다. 부조는 평평한 판에 어떤 형상을 조각하는 것이다. 고선지 장군을 조각해 갔다. 다른 아이들은 꽃, 과일, 자기 얼굴 등을 조각해 왔는데 혼자 당나라 장수를 조각해가니 선생님께서 신기해하셨다. 칭찬도 받았고 그 작품으로 학급 우수상도 받았다. 큰 상을 받은 건 아니지만 칭찬받을 기회가 없었던 유년기를 보냈기 때문에 크게 와닿았다. 내가 잘하는 것이 있구나 생각 들었다. 그때부터 조각가가 되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

    본인제공

    -고선지 장군을 좋아한 이유가 뭔가

    “고아원 내에 있는 도서관에서 책을 자주 읽었다. 그때 읽은 어떤 책에 고선지 장군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 고선지는 통일신라시대에 살았던 고구려인이자 당나라 장수다. 고구려인이 낯선 땅인 당나라에서 이름을 떨치며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것이 어린 나에게 인상 깊었다. 해발 5000m가 넘어 ‘세계의 지붕’이라 불리는 파미르고원을 넘나들던 고선지가 나폴레옹보다 멋있게 느껴졌다.”

    본인제공

    -앞으로의 목표는?

    “소소하게 내 작업장 하나 마련하고 싶다. 어마어마한 전시를 열거나 이름을 떨치거나 그런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좋아하는 조각을 하면서 그걸로 생계도 해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작업장을 마련하는 데 얼마가 들고 이런 것들은 잘 모르지만 막연하게 꿈꾸고 있다. 이번에 발간한 책이 꿈을 이룰 수 있는 발판 역할을 해 줬으면 좋겠다.

    오늘, 내일, 모레. 우리 인생의 나날들은 그렇게 특별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 모든 날들을 희망을 품고 보내고 싶다. 책 제목은 그런 의미에서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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