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많이 들고, 돈 많이 번다고 오해 받는 직업입니다

  • 글 jobsN 이영지 인턴

    입력 : 2018.11.08 09:19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허규형
    팟캐스트 뇌부자들 진행자
    책 ‘어쩐지 도망치고 싶더라니’ 공저

    이비인후과, 정형외과, 치과, 소아청소년과…사람들은 몸의 어딘가에 상처를 입었거나 아플 때 병원을 찾는다. 어디가 아픈지에 따라 각자 다른 진료실로 들어간다.

    정신건강의학과. 몸이 아닌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곳이다. 여기에는 다른 과에는 없는 ‘건강’이라는 말이 들어가있다. 굳이 ‘건강’을 넣어야했던 이유는 정신과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 때문일지도 모른다.

    “정신과 약, 그거 중독되는거 아니야?”
    “마음만 굳게 먹으면 되는걸, 무슨 치료를 받는다고.”

    정신과에 대한 이러한 편견을 없애기 위해 만들어진 팟캐스트가 바로 ‘뇌부자들’이다. 젊은 정신과 의사들이 하는 솔직하고 은밀하고 자상한 정신건강과 마음이야기. 팟캐스트 ‘뇌부자들’의 진행자 허규형(33) 원장은 작년 여름부터 매주 정신과에 대한 편견과 맞서고 있다.

    팟캐스트 뇌부자들

    ◇ “네가 의대를 간다고?”

    허 원장은 초등학생 때부터 의사를 꿈꿨다. “어릴 때부터 피부과 진료를 오랫동안 받았어요. 그러면서 막연하게 ‘의사가 되고싶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구체적으로 정신과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건 고등학생때다. “내 얘기를 하는 것보다 다른 사람 이야기를 듣는 걸 더 좋아했습니다. 사람을 알아가는 과정이 좋았죠.” 그래서인지 유독 언어·사회 과목 점수가 높았다. 의대를 목표로 한다고 했더니 학교 선생님들이 의아해하실 정도였다.

    ◇ 뇌부자들, “다시 배우고 있습니다”

    2017년 7월에 문을 연 팟캐스트 ‘뇌부자들’은 1년 만에 인기 차트에 올랐다. 10월31일 현재 건강 카테고리에서 1위, 전체 카테고리에서는 25위에 올라 있다. 누적 조회 500만 건, 구독자 수는 2만 5000명을 훌쩍 넘었다.

    팟캐스트 '뇌부자들'은 건강 카테고리에서 1위, 전체 카테고리에서는 25위에 올라 있다. /팟캐스트 인기 차트 캡처 (2018년10월31일)

    정신과에 대한 편견을 깨기 위해 만들었다는 팟캐스트 ‘뇌부자들’. 그 목적을 달성했다고 느끼는지 물었다.

    “청취자분들에게는 도움을 드리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댓글이나 메일로 피드백을 주시는 분이 꽤 많아요. ‘상담비가 비쌀까봐 엄두를 못 내고 있었는데 방송을 듣고 용기를 내서 병원에 다녀왔다’거나 ‘우울함을 호소하는 사연자의 이야기가 남 일 같지 않아서 큰 위로를 받았다’는 분도 계세요.”

    팟캐스트 방송을 시작한 이후로 자신의 변화도 체감하고 있다.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정신과적 지식들이 사실은 조각조각 흩어져있었던 것 같아요. ‘뇌부자들’을 하면서 그 조각들을 스스로 맞춰가고 있다는 걸 느끼고 있습니다.”

    동료에게 배우는 점도 많다. 같은 사연을 보면서 자신은 생각지도 못한 시선으로 접근할 때 내심 놀라기도 한다. 이를테면 “육아는 양보다 질이다. 하루에 1시간만 보더라도 충분히 교감하고 밀도 있게 보면 하루종일 보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이다.

    “저에게 해주는 말 같아서 큰 위안을 받았어요. 진료실에서 환자분들께도 종종 말씀드립니다.”

    ◇ 정신건강의학과의 속사정

    정신과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편견 ‘돈’에 관한 질문에 돌아온 대답은 모두 “NO”였다. 대표적인 것이 ‘정신과 상담 비용이 비쌀 것’이라는 편견이다. 2018년 7월 1일부로 정신과 수가가 바뀌면서 환자 본인 부담금이 많이 줄었다.

    2018년 7월 1일부로 정신과 수가가 바뀌었다. 초·재진시 환자 부담금이 모두 크게 줄었다. /2018년 1월 31일 보건복지부 보도자료 캡처

    동네의원을 간다고 할 때, 상담비 중 환자 부담은 10~20%다. 보통 초진에서 간단한 설문지를 포함해 30~40분 정도 면담하고 약을 받아간다고 하면, 환자 부담금은 2~3만원 선이다. 재진의 경우 만원 이하일 때도 많다. “진료를 받으시는 입장에서 부담일 수 있지만, 생각하시는 것만큼 비싸지는 않습니다.”

    ‘정신과 상담은 비싸다’는 생각은 ‘정신과 의사는 돈 많이 벌겠다’는 추측으로 이어진다. 이 역시 “NO”였다. “돈을 많이 벌 생각이었다면 비보험 진료·투약이 많은 과로 갔겠죠. 정신과는 나라에서 받으라는 만큼만 받아야하는, 대표적인 ‘보험과’입니다.”

    2017년 한국직업정보센터가 조사한 결과, 정신과 의사의 평균 연봉은 약 9200만원이다. 이는 설문조사 응답자들이 대답한 평균적인 연봉이다. 국세청에 신고하는 공식 통계와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

    SBS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 캡처

    SBS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2014)의 여주인공은 정신과 전문의다. 환자와의 상담 장면, 의사의 고충 등이 그려졌다. 실제 정신과 전문의가 보는 드라마의 모습은 어떨까.

    “상담하는 내용이나 컨퍼런스하는 장면은 꽤 비슷하게 잘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실제와 몇가지 다른 점은 있어요. 환자의 이야기를 일반인에게 한다던지 하는 장면들이요. 의사가 환자의 정보를 다른 사람에게 알리는 것은 명백한 의료법 위반입니다.

    특히 괴리감이 큰 부분은 ‘환자와 사랑에 빠진다’는 설정입니다. 실제로 치료과정에서 환자가 의사를 이성으로 보고 사랑을 느끼는 ‘전이현상’은 있을 수 있어요. 의사가 환자에게 특별한 감정을 가지는 역전이현상도 있죠. 하지만 정신건강의학과 교과서에도 써 있을 정도로 정신과 의사와 환자 사이의 사랑은 금기입니다.”

    임상심리학회 윤리규정은 ‘환자와의 어떠한 성적 관계도 허용하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다.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에서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남자주인공(조인성)과 정신과 전문의 여자주인공(공효진)이 사랑에 빠진다. /SBS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 캡처

    ◇ ‘조현병’ 범죄 피의자들의 단골 소재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 피의자는 조현병 진단을 받았다. 검찰이 무기징역을 구형했으나 재판부는 ‘심신 미약’ 상태를 고려해 징역 30년을 선고했다. 2018년 ‘강서구 PC방 살인사건’ 피의자는 자신이 우울증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관련 기사에는 수백개의 댓글이 순식간에 달린다.

    “정신 질환이 있다고 해서 그것이 ‘심신 미약’이나 ‘심신 상실’을 뜻하는 건 아닙니다. 정신과 전문의가 한 달 동안 피의자를 관찰·분석해 진단을 내린다고 해도, 그것이 재판 결과로 곧장 이어지는 것 역시 아닙니다. 법적 판단은 재판부의 몫이니까요.

    가장 걱정스러운 점은 이번 사건으로 ‘정신질환자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커질까 우려스럽다는 겁니다. 악용하는 사람이 생긴다는 게 정신과 의사 입장에서 안타깝죠. 결국 그 피해는 실제 환자에게 돌아가는 거니까요.”

    강서구 PC방 살인사건 피의자는 치료감호소에서 한 달간 정신감정을 받는다. 관련 청와대 청원에 역대 최다 인원(152만2151명, 2018년11월5일 기준)이 참여했다. /TV조선 뉴스 캡처(왼쪽),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 캡처(오른쪽)

    ◇ 가장 필요한 자질은 ‘듣는 귀’

    정신과 전문의가 상담만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정신과 전문의라면 상담을 꼭 해야 한다. 허 원장이 정신과 전문의에게 가장 필요한 자질로 ‘잘 듣기’를 꼽은 이유다.

    “말을 끊지 않고 끝까지 잘 들어주는 것이 생각보다 어려운 일입니다. 충분히 들은 다음에 공감을 보여준다면 금상첨화죠.”

    정신과 전문의 허규형 원장의 진료실에서. /jobsN

    요즘 SNS에서 ‘감정 쓰레기통’이라는 말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가족·친구 또는 직장동료의 짜증을 받아내거나 힘든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자신이 ‘감정 쓰레기통’으로 느껴진다는 식의 이야기다. 정신과 의사야말로 ‘감정 쓰레기통의 끝판왕’이 아닐까.

    “저도 사람이라서 힘든 얘기를 들으면 힘들 때가 있어요. 그래서 여러 방법으로 해소하려고 노력합니다. 온 몸이 땀으로 흠뻑 젖을만큼 운동을 하거나, 선배·동료에게 조언을 구하기도 하고요.

    예전엔 집에 돌아가서까지 환자분을 걱정하기도 했는데, 이제는 최대한 진료실 안과 밖을 나누려고 합니다. 장기적으로 보면 더 많은 환자들을 더 잘 도와드릴 수 있기 때문에 이런 훈련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보람을 느끼는 순간도 있다. 환자의 증세가 나아질 때다. “정신과 환자분들은 빠르게 좋아지는 분이 잘 안 계셔서 더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하지만 건강이 좋아진 환자가 직접 찾아오는 경우는 드물다. 자주 오던 환자의 발길이 끊어지면 그저 ‘완전히 좋아지신 것이길’ 바랄 뿐이다.

    허 원장(왼쪽)은 EBS 라디오 '미드나잇블랙' 화요일 코너 '心토크 – 너의 가사를 보여줘'에 격주로 고정 출연중이다. 오른쪽은 DJ인 인피니트 성종. / 인스타그램 ebsmidnightblack 캡처

    ◇ AI 상담이 가능해진다면

    신입사원 공채에서 ‘AI 면접’을 도입했을 정도로 AI가 가까이 다가왔다. 정신과 상담도 전문의 대신 AI가 하는 시대가 올까.

    “저는 ‘4차 산업혁명’으로 시끌시끌할 때도 ‘정신과’만큼은 타격이 덜하지 않을까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벌써 고민을 듣고 알고리즘으로 분석해서 상담을 해주는 AI를 개발중이라고 하더라고요. 고민 내용을 분석하고 투약만 하는 것이라면 아주 불가능한 일도 아닐 거예요. 그래도 워낙 변수가 많아서 ‘쉽지는 않을 것 같다’는 기대섞인 전망을 해봅니다.”

    SBS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 중 진료실 상담 장면 / SBS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 캡처
    마지막으로, 아직도 편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물었다. “우울증은 의지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의지가 약하거나 성격에 문제가 있어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도움을 받으면 얼마든지 좋아지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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