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유업 갑질’ 보며 무릎을 ‘탁’ 친 이 사람, 그 이유가…

  • 글 jobsN 김지민

    입력 : 2018.10.09 11:03

    경제법⋅환경 전공한 석사가 세운 ‘지속가능발전소’
    지배 구조·사회·환경 등 비재무 정보 제공 서비스
    AI로 뉴스 분석해 기업 리스크 예측 가능
    “개인 투자자도 비재무 정보 관심 늘어”
    윤덕찬 지속가능발전소 대표. / 지속가능발전소 제공

    2013년은 ‘갑질’ 이슈를 촉발한 남양유업 사태가 있던 해다. 남양유업이 대리점에 물건 밀어내기를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전 국민의 공분을 샀다. 갑질 사태 이전 100만원을 넘나들던 주가는 현재 60만원대로 떨어졌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이뤄진 불매운동은 매출 감소로 이어졌다.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든 사태를 지켜보며 무릎을 친 사람이 있다. 윤덕찬(45) 지속가능발전소 대표다. 그는 SNS 발달로 정보 공개가 활발해지면서 기업이 자발적으로 공개하는 실적이나 애널리스트가 알려주는 것들이 결코 다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질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매출액, 부채비율 같은 숫자가 아닌 기부금, 비정규직 고용률 등의 비재무 정보를 제공하는 회사인 지속가능발전소를 2014년에 차렸다. 한화생명이 스타트업을 지원하기 위해 출범시킨 드림플러스 2기 출신 업체다. jobsN이 여의도 위워크에서 윤 대표를 만났다.

    ◇ 석사⟶공무원⟶대기업 관두고 창업

    윤 대표는 경희대 법대에서 학부와 석사를 마쳤다. 1998년에 받은 석사 학위 논문 주제는 ‘WTO(세계무역기구) 체제 상 환경 보호를 위한 통상 보호의 합법성’에 관한 것이었다. 당시만 해도 경제법과 환경법의 충돌 문제를 다룬 논문이 많지 않았다. 윤 대표는 첫 직장인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에서 논문 주제와 관련한 일을 이어가다가 산업통상자원부 전문 연구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안정적이었지만 정년이 보장된 공무원 생활은 별로 행복하지 않았다. 대기업 산하 LG환경연구원(현 네오에코즈)으로 자리를 옮겼다.

    “공무원 생활에 불만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재미도 없었어요. 자꾸만 ‘몽당연필’이 돼 가는 것 같았습니다. 정부에서 일하면서 기업에서 일하는 분들을 만날 기회가 많았어요. 때마침 좋은 제안이 와서 LG환경연구원으로 자리를 옮겼죠. 내가 좋아하는 분야에 대한 연구도 계속하면서 돈도 버니까 참 좋더라고요.”

    그가 맡았던 일은 기업의 지속가능경영을 위한 컨설팅 업무다. 지속가능경영은 기업이 경제 성장과 함께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을 다하면서 지속적인 성장을 꾀하자는 취지로 2000년대 태동한 패러다임이다. 기업들이 주기적으로 지속가능경영 보고서를 발간하면서 이를 평가하고 지수를 발표하는 해외 기관도 생겨났다. ‘다우존스 지속가능경영지수(DJSI)’를 발표하는 세계 최대 금융정보 제공기관인 미국 다우존스가 대표적이다. 창업을 결심한 것은 지속가능경영 컨설팅 일을 하면서다. 

    “어느 날 뉴스를 봤는데 깜짝 놀랐어요. 우리나라 기업들이 국내 최초로 DJSI 월드 섹터 리더에 올라간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기업 3개가 한꺼번에요. 더 놀라웠던 것은 이들 기업 모두 같은 컨설팅 회사에서 자문을 받았다는 거였죠. 어떻게 했길래 이런 결과를 냈을까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었어요. 계급장 떼고 당장 들어가 배우고 싶을만큼요. 운이 좋았죠. 얼마 뒤 그 컨설팅 회사에 취직을 했어요. 근데 2주 만에 그만뒀어요. 그 회사는 기업이 지속 가능성을 어떻게 내재화하는지 방향을 제시해주는 컨설팅을 하는 곳이 아니었어요. 등수 안에 들기 위해서 어떻게 설문을 작성하면 되는지, 일종의 모범 답안 만드는 스킬을 기업들에게 가르쳐 주고 있었죠. 이건 ‘사기’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회사를 나왔죠.”

    지속가능발전소 소개 영상 / 한화 드림플러스 제공

    ◇ “블랙박스 같은 비재무 정보, AI로 객관성 높여”

    이직한지 한 달도 안돼 회사를 박차고 나온 윤 대표는 고민에 빠졌다. ‘컨설팅 회사가 기업들에게 모범 답안을 제시하는 것이 가능한 이유는 뭘까’. 고민 끝에 얻은 결론은 ‘데이터’였다. 지속가능경영 평가 상당 부분이 기업 설문에 의존한다. 평가를 받는 기업이 평가 기관이 제시한 기준에 부합한 모범답안을 써내면 점수를 잘 받을 수밖에 없다.

    “지속가능경영 평가에 참여하려면 일단 100페이지 분량의 설문을 작성해야 합니다. 기업 각 부서는 지난 1년간 경영 성과 활동을 기록하고, 평가 기관은 이를 바탕으로 기업을 평가합니다. 기업이 자기들의 업적을 스스로 쓰는 격이라 데이터가 객관성을 띨 수 없다는 것이 문제죠. 저는 이런 것을 '데이터의 오염'이라고 불러요. 아무리 훌륭한 분석 방법을 도입해도 오염된 데이터를 쓰면 개인들이 제대로 된 정보를 접할 수 없습니다.”

    기업이 제공하는 정보를 어떻게 객관화할 수 있을까. 윤 대표가 착안한 지점은 인공지능(AI)이다. 3년을 매달려 AI를 활용해 지속가능경영을 평가하는 주요 지표인 환경⋅사회⋅지배 구조(ESG)와 관련한 정보를 분석하는 알고리즘을 만들었다. 서비스 명은 ‘후즈굿(Who's good)’. 후즈굿을 통해 2016년 11월부터 네이버 증권 ‘모바일 서비스’에서 매출액 상위 300대 기업의 비재무 데이터를 제공하고 있다. 누적 방문자 수는 160만명을 넘어섰다. 개인투자자들은 한화투자증권 간편 투자 앱 ‘스텝스(STEPS)’를 통해서도 비재무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비재무 정보를 흔히 ‘블랙박스’에 비유해요. 어떻게 취합되고 평가되는지 알 길이 막막하다는 뜻이 담겼죠. 기업이 공시를 통해 공개하는 자료, 정부 공공데이터, 뉴스 등 공개된 빅데이터를 사람이 아닌 AI가 분석하면 정확도와 객관성이 높아집니다. 특히 정부가 갖고 있는 데이터를 활용하면 정보의 질이 높아지는데요. 문제는 정부가 비협조적이라는 것입니다. 예컨대 노동조합 가입, 산업재해 등과 관련한 데이터를 영업 비밀이라는 이유로 공개하려 하지 않아요. 해결해야 할 숙제죠.”

    네이버 증권 ‘모바일 서비스’에서는 지속가능발전소가 제공하는 매출액 상위 300대 기업의 비재무 데이터를 확인할 수 있다. /지속가능발전소 제공

    ◇ 은행 대출 시 비재무 정보 활용..“AI 기반 리스크 예측 서비스 론칭”  

    공공데이터와 함께 AI로 분석할 수 있는 빅데이터 중 하나가 뉴스다. 지속가능발전소 분석 결과를 보면 1990년 1월부터 지금까지 기업 관련 뉴스 데이터는 6000만여 건. 90년대 초반 기업 관련 기사 발생 건수는 하루 평균 300건에 불과했지만 최근에는 2만 건을 웃돈다. 올해 1~5월까지 215만개 기업 관련 기사 중 19만 4000건이 사건사고와 같은 비재무 정보성 기사였다.

    “AI로 뉴스를 분석해서 비재무 정보 분석에 반영하는 곳은 우리를 포함해 전 세계적으로 서너 곳 정도 됩니다. 우리가 갖는 차별성은 뉴스 분석 방식에 있습니다. 특정 사건에 대해 어느 언론이 비판의 목소리를 얼마나 자주, 어떤 강도로 냈느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매체나 쓰는 기자에 따라 기사 방향, 비판의 강도 등이 달라질 수 있으니까죠. 대신 사건을 유형별로 분류하고 심각성에 점수를 줍니다. 이른바 ‘팩트 스코어링(fact scoring)’입니다. 예를 들어 겉으로 보기엔 훌륭한 회사지만 화학물질 관리는 잘 안되고 있다는 것을 뉴스 속 팩트를 분석해 개인투자자들에게 알려주자는 것이죠.”

    지속가능발전소는 뉴스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기업의 부도율 같은 리스크 요인을 예측하는 서비스를 연내 출시할 예정이다. “해외에서는 기업이 대출 전 신용평가를 받을 때 환경, 인권, 근무조건 등과 관련한 부분에서 평가를 받아요. 하지만 우리나라는 중소기업이 대출을 신청할 때 창구 직원이 구두로 물어보는 정도죠. 뉴스를 제대로 분석해 기업 부도 가능성을 예측해주면 은행은 대출 시 리스크를 낮추고 성장 가능성 높은 중소기업의 자금 여력이 커집니다.”

    지속가능발전소 직원들과 함께 한 윤 대표. / 지속가능발전소 제공

    ◇ 주요 타깃은 해외, 내년 일본 진출

    ‘다 좋은데, 돈이 되겠어?’, ‘시민단체(NGO) 같은데?’

    윤 대표가 사업을 시작할 때 가장 많이 들은 소리다. 현재 전 세계 비재무 정보 데이터 분석 시장은 1조원 규모. 우리나라에는 지속가능발전소를 포함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서스틴베스트 등 세 개 업체가 비재무 정보 서비스를 한다. 해외에서는 인사이트360, MSCI, 블룸버그, 톰슨로이터 등 미국 업체와 스위스에 있는 렙리스크(RepRisk) 등이 경쟁 중이다.

    지속가능발전소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해외'다. 2017년 2월부터 2018년 4월까지 16개국 91개 기관투자자가 미국 시장조사업체인 팩트셋을 통해 지속가능발전소 리서치 보고서를 이용했다. 내년에는 일본 진출을 앞두고 있다.

    “세계적으로 사회책임 투자 시장은 30%대 성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일본, 중국 등 아시아 여러 나라들이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자의 의결권 행사 지침)를 강조하고 있죠. 주주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면서 양질의 ESG 데이터가 중요해질 수밖에 없어요. 우리 미션은 ‘좋은 회사가 좋은 사회를 만든다’입니다. 사업을 시작할 무렵 ‘기업은 저절로 착해지지 않는다’라는 책을 읽고 감명을 받았어요. 책에는 기업이 변하기 위해서 투자자, 소비자, 직원 등이 변해야 한다고 쓰여있어요. 우리가 그중 하나를 해보자 결심했어요. 세상은 변하고 있다고 확신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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