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차 에이스 은행원이 ‘XX놈’ 소리까지 들어가며 벌인 일

  • 글 jobsN 최광

    입력 : 2018.09.11 07:43

    이선용 스튜디오봄봄 대표
    전경린·성석제·장강명 등 인기작가 작품 발표
    글쓰기 플랫폼 새벽두시도 서비스

    독서의 계절 가을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책을 읽는 것보다 스마트폰으로 동영상을 보고 게임을 한다. 책을 읽지 않는 시대에 사람들이 손에서 놓지 않는 스마트폰을 도서관으로 만들겠다는 사람들이 있다. 웹소설 플랫폼 ‘판다플립’과 짧은 글쓰기 공유 플랫폼 ‘새벽두시’를 운영하는 스튜디오 봄봄이다.
     
    판다플립은 판타지나 무협, 로멘스 등 장르문학 일색인 웹소설 플랫폼이 아니다. 전경린∙성석제∙장강명 등 국내 대표 소설가들이 이곳에서 초단편 소설을 발표했다. 판다플립 독자는 월 2000명 수준이며, 작가는 200명이 넘는다. 유료독자는 20%가 넘고, 재구매율도 70% 수준이다. 판매플립 구독료와 카카오페이지 유통수익, 외주 편집 등을 합쳐 한달 매출액은 3000만원 수준이다.

    이선용 판다플립 대표

    새로운 웹소설 플랫폼 판다플립을 만든 이선용(39) 스튜디오봄봄 대표를 만나 스마트폰 시대에 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 경력이 독특하다. 글쓰기와는 관계가 없는 삶을 살았는데.

    “은행에서 9년을 일하다 작년 6월말에 퇴사했다. 지점에서 4년을 일했고 재무기획부에서도 3년 근무했다. 금융감독원 파견도 갔다 왔으니 나름 회사에서 인정받는 직원이었다.”
     
    - 왜 창업을 했나?

    “대학시절 문학청년 수준은 아니었다. 하지만 진짜 문학청년의 친구였다.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한 이혁진 작가가 바로 그 친구다. 그 친구가 책을 참 많이 추천해줬다. 그 친구 영향인지 책을 많이 읽었다. 교양 수업도 인문학적인 소양을 갖출 수 있는 수업을 들었다. 종교학도 학위를 마칠 수 있었는데 아쉽다. 어떤 분야에 관심이 생기면 바로 책을 사거나 빌려보며 파고 들었다. 경제학도 그렇고 법학도 그랬다.

    그래도 꾸준히 시를 쓰면서 살았다. 등단을 해볼 생각도 있었다. 마침 뜻을 같이 한 출판사 편집자가 있었다. 의기투합해서 창업준비를 했다.”
     
    - 창업준비는 어떻게 했나?

    “일단 회사를 다니면서 차근차근 준비했다. 일단 마음에 맞는 사람과 팀을 만들어 각자 자기 일을 하면서 서비스를 만들었다. 팀을 만든 건 2014년 7월이다. 서비스 규모가 충분히 성장하거나, 넉넉한 투자를 받을 때까지는 회사를 다니기로 했다. 서비스 시작은 2015년인데 법인을 만든 건 작년 7월이니 잠수가 길었다.

    작년에 기업용 소프트웨어 기업과 출판사로부터 10억원의 투자를 받았다. 퇴사 하기에 충분했다. 이미 판다플립 서비스도 어느정도 안정세를 타고 있었다.”

    판다플립 웹소설 공모전 '복면작가왕' /판다플립

    - 어떻게 시작했나?

    “일단 기획자와 개발자가 필요했다. 단순한 장르문학 플랫폼이 아니라 독자가 결말에 이르는 과정을 선택할 수 있는 열린 결말 시스템을 만들겠다며 1페이지짜리 기획서를 만들었다. 그걸로 함께 할 사람들을 만났다. 다들 재밌는 아이디어라고 말했지만 이전에 은행원이었다고 하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래도 기획자와 개발자가 모였다. 이제 작가가 필요했다.
     
    그 아이디어를 KBS 구성작가 모임 카페에 올렸다. 30일만에 구성작가 50명이 참여의사를 밝혔다. 아직 이렇다 할 서비스도 없었는데 방향만 보고 석달만에 판다플립에 작품을 올려보겠다는 사람이 200명이 넘었다. 그 때 기획은 ‘갈래’라는 장르로 서비스하고 있다.”
     
    - 은행에 다니다 웹소설 플랫폼을 만들겠다고 창업했으면 주변에 반대가 많았을 것 같다.

    “한마디로 미친놈이라고 하시더라. 웹소설이 무엇인지 잘 모르셨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창업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2012년이다. 그 때부터 언젠가 창업을 할 거라고 말하고 다녔다. 집에서도 이해를 해줬다.자기 삶을 살아야 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는 아내는 응원해줬다.”

    판다플립에 초단편 소설을 올린 전경린, 성석제, 장강명 작가

    - 서비스를 알리기 위해 마케팅은 어떻게 했나.

    “조금 새로운 방식의 공모전을 진행했다. 자금이 넉넉하지 않으니 상금을 많이 줄 수는 없었다. 그래서 방식을 다르게 하고 심사위원 섭외에 공을 들였다. 공모전은 블라인드 배틀 방식으로 했다. 누가 올렸는지 정보를 모른 채 독자들은 작품을 보고 투표한다. 투표결과를 반영해 심사위원이 평가하고 다음 라운드로 넘어가는 방식이었다. 심사위원도 퇴마록의 이우혁 작가, 미스터리 전문 출판사 북스피어의 김홍민 대표, 영화 옥자의 조용진 조감독 등이었다.
     
    2016년 1월부터 4월까지 했다. 신선한 기획이라며 언론에서도 많이 다뤘다. 응모작품은 500편 정도였다. 독자도 두배 이상 성장해 1000명에서 2000명 정도로 늘었다.”
     
    - 작년에는 순수문학 작가들이 참여한 프로젝트도 있었다.

    “초단편이라는 콘셉트로 작년 10월에 시작했다. 사람들이 책을 접할 때 미스터리나 스릴러와 같은 장르문학은 쉽게 읽는다. 순수문학에서는 박진감 넘치는 글을 보기 어렵다. 추구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이다. 왜 사람들이 순수문학을 읽지 않을까 고민하다 내린 결론은 ‘짧아야 한다’였다.
     
    기존 단편소설보다 짧은 원고지 2000자 분량의 소설을 해보자고 기성 문단 작가들에게 연락했다. 다행히도 새로운 변화를 공감한 '염소를 모는 여자'의 전경린, '투명인간'의 성석제, '댓글부대'의 장강명, '세계의 끝 여자친구'의 김연수, '고래'의 천명관 작가 등이 대거 참여했다. 처음에는 길이가 너무 짧아 구성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애를 먹었는데 이제는 감을 좀 잡은 것 같다. 이 서비스는 출판사 편집인이었던 공동창업자의 공이 컸다.”

    새벽두시 홈페이지

    - 새벽두시라는 글쓰기 플랫폼도 있는데.

    “사람들이 책을 안 본다는 말은 안 쓴다는 말과 같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누구나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어한다. 그래서 자기 이야기를 글로 쓰고 소통하는 플랫폼을 기획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까 걱정했는데, 1000명이 넘는 사람이 자기 이야기를 글로 쓰고 있다.

    새벽두시에서 글을 쓰는 사람의 오프라인 모임 야밤작당도 있다. 직장인들이 많다보니 퇴근 후 저녁 8시쯤 모인다. 서로 글감을 나누고 쓴 글을 평가하는 모임이다.”
     
    - 수익모델이 궁금하다.

    “판다플립은 유료결제 모델이 있다. 또 카카오페이지 등에 웹소설을 공급하면서 유통수익도 번다. 전자책 서비스 리디북스의 편집 외주 업무도 하고 있다. 이렇게 벌어들이는 수익이 한달에 3000만원 정도다.
     
    새벽두시는 아직 수익모델이 없다. SRT(수서발 고속열차)와 문학열차를 만들어보자는 논의는 하고 있다.”
     
    - 글쓰기를 직업으로 삼겠다는 사람에게 하고 싶은 말은?

    “하고 싶은 일이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그게 돈과 명예가 따르는 일이라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글쓰는 것만으로 경제생활을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는 일 때려치고 글을 쓰는 건 위험하다. 전업작가가 아니라도 꾸준히 글을 쓰는 것 자체로도 지금 삶의 빈 곳을 채워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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