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딩 실력은… 특기는… 私기업도 블라인드 채용

IT 기업 카카오 홈페이지에 하반기 채용 공고가 올라와 있다. '학력·전공 무관'이라고 적혀 있다. 제목은 '첫 번째 카카오 블라인드 채용'. 2014년 '다음'과 합병한 카카오는 지금까지 학력·경력 등을 보고 수시 채용만 해왔다. 이번에 첫 공채를 실시하는 것이다. 새로운 채용 과정을 도입했다. 입사지원서에서 '스펙(신상명세)'은 완전히 가린다. 대신 세 차례 온·오프라인 코딩 테스트를 보기로 했다. 코딩 테스트는 얼마나 컴퓨터 프로그램을 잘 짜는지 검증하는 것이다. 올해 초 경력 채용 때 1회만 코딩 테스트를 했었다. 이번에 3회에 걸쳐 코딩 테스트를 실시하는 것이다. 전문대학에서 컴퓨터 관련 전공을 한 김모(23)씨는 이 카카오 코딩 테스트에 지원했다. 카카오 채용 사이트에 성명, 이메일, 휴대전화 번호만 입력하면 응시 가능했다. 김씨는 "예전엔 입사 지원서 넣을 엄두가 안 났을 것"이라고 말했다. 카카오 관계자는 "학력·경력을 볼 수 없으니, 코딩 실력이 당락을 가릴 것"이라고 했다.

정부가 올해 하반기부터 공기업·공공기관을 대상으로 '블라인드 채용(입사 지원서에 출신 학교와 지역, 학점 등을 안 쓰는 것)'을 도입했다. 일반 사기업 중에서도 도입하는 곳이 잇따른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지난 4일 209개사를 대상으로 올해 채용 계획을 설문한 결과, 62개사(약 30%)가 '블라인드 채용'을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입사 지원자의 '스펙'을 보지 못하면서, 지원자의 다른 능력을 검증하기 위한 묘안을 짜내고 있다.

박카스 등을 만드는 동아쏘시오홀딩스도 올해 처음 블라인드 채용을 도입했다. 지난 7월 공채 때 영업 직군에 대해 트럭 운전 시험을 치렀다. 트럭 운전 시험은 이전부터 해왔다. 그땐 운전만 할 수 있으면 별문제가 없었다. 올해는 보조석에 앉은 평가자가 지원자의 운전 습관 등을 꼼꼼히 체크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학력 등을 전혀 알 수 없으니, 운전 실력이 당락을 좌우할 만큼 중요해졌다. 운전 중 지원자의 성격까지 채점했다"고 말했다. 이 채용에서 바둑학과 졸업생이 선발된 것이 사내 화제였다. 이 학생은 "다른 회사에 지원했을 땐 전공 때문에 번번이 서류에서 고배를 마셨다. 이번엔 차분하게 운전한 것이 좋은 평가를 받은 것 같다"고 했다고 한다.

기업 채용 방식이 바뀌면서 취준생들은 새 취업 전략을 짜고 있다. 현대모비스는 블라인드 채용 전형을 신설하고 개인별 맞춤 면접을 치르기로 했다. 자신이 내세우고 싶은 특기를 시연하면 면접관이 이를 심사하는 식이다. 예를 들어, 해킹 대회 수상 경력이 있으면 면접에서 해킹 실력을 시험한다. 인류학과에 재학 중인 이모(28)씨는 8일 현대모비스에 지원하면서 독학으로 민항기 조종사를 준비했던 경험을 내세웠다. 10월 있을 맞춤형 면접 때 이씨는 비행기 작동 원리에 대해서 설명하고 연료 충전 방법을 시연할 계획이다.

신한카드는 올해 블라인드 채용 전형으로 디지털과 관련된 직무 능력만을 평가하는 '디지털 패스(Digital Pass)' 전형을 새로 만들었다. 지원자들의 '디지털 사업' 관련 아이디어를 평가하는 것이다. 예전에 금융권 입사 지원자들은 각종 금융 관련 자격증을 따는 것에 집중했다. 신한카드 취준생 모임에선 디지털 관련 신사업 아이디어 짜내기에 집중한다.

인사채용 전문가인 서울대 경영학과 김성수 교수는 "한국 기업은 스펙을 보지 않고 채용하는 데 익숙하지 않다"며 "기업이나 취준생 모두 어느 정도의 시행착오는 불가피하지만, 유능한 인재를 뽑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