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發 정규직 전환 바람… 이마트·기업은행도 추진

초고속인터넷 기업 SK브로드밴드가 서비스 전문 자회사를 만들어 인터넷 설치와 유지 보수를 담당하는 협력업체 직원 약 5200명을 정규직으로 채용하기로 하면서 산업계 전체로 파장이 확산하고 있다. 이번 결정은 문재인 대통령이 인천공항공사를 방문해 "공공기관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열겠다"고 말한 지 일주일 만에 나온 것으로, 새 정부가 추진하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 공공 부문에서 민간으로 확대되는 양상이다.

당장 22일 편의점 체인인 이마트 계열 위드미가 우수 가맹 경영주를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제도를 도입한다고 밝혔다. 정규직으로 선발되는 점주사원들은 자기 점포를 유지하면서 본사 정규직과 동일한 수준의 급여와 종합검진·학자금 지원 등을 받게 된다. 또 한국씨티은행이 계약직 300명, IBK기업은행이 무기(無期) 계약직 3000명의 정규직화를 추진하고, LH는 비정규직 업무 중 정규직 전환이 가능한 업무를 파악하기 위해 외부 용역을 의뢰했다.

◇SK브로드밴드 "서비스질 향상 위한 것"

SK브로드밴드가 정규직으로 고용하는 인원은 103개의 하도급 협력업체 직원 5189명이다. SK브로드밴드는 다음 달 초 자본금 460억원 규모의 자회사를 만든 뒤 오는 7월부터 채용 절차를 밟게 된다. 앞으로 위탁 계약이 끝나는 센터들과 재계약을 하지 않고 소속 설치·수리 기사들을 채용하겠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협력업체 사장에게는 따로 보상책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SK브로드밴드는 정규직 채용 추진에 대해 "서비스 질(質)을 향상시켜 경쟁력을 강화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의 초고속인터넷과 인터넷TV(IPTV) 개통·수리 업무를 넘어 사물인터넷(IoT)과 보안 서비스 등 SK의 신성장 분야를 담당하는 회사로 키우겠다는 것이다. SK브로드밴드 관계자는 "자회사 정규직 전환을 통해 설치·수리 기사들의 고용 불안이 해소되면 서비스 수준 개선과 마케팅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SK브로드밴드가 협력업체 직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할 경우 추가적인 비용 부담이 불가피하다. 지역별 센터 사무실과 각종 설비 인수는 물론이고, 직접 채용하는 직원들에 대한 임금·복지와 4대 보험료까지 따져보면 최소 50% 이상 비용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때문에 SK브로드밴드의 정규직 전환에 대해 "새 정부의 고용 정책을 의식한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SK브로드밴드는 이에 대해 "경쟁사인 KT는 2015년부터 서비스 직원들을 자회사 정규직으로 고용하고 있으며, 우리도 새 정부 출범 전부터 검토해왔던 사안"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동안 센터를 운영해온 SK브로드밴드 협력업체 사장들은 이날 성명을 내고 위탁업무 재계약 거부에 법적 대응하기로 했다. 협력업체 사장들은 "SK브로드밴드가 협력업체의 일감과 소속 근로자들을 빼가려 한다"고 주장했다.

◇협력업체 정규직 전환, 민간 확산되나

SK브로드밴드의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발표로 비슷한 형태의 하도급 계약을 유지하고 있는 다른 통신·케이블TV 업체들도 발 빠르게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CJ헬로비전은 이날 주요 간부 10여 명이 대책회의를 갖고 협력업체 상황에 대한 점검에 들어갔다. CJ헬로비전은 전국 40개 지역의 협력업체에서 약 1600명의 설치·수리 기사를 채용하고 있다. CJ헬로비전 관계자는 "일선 협력업체 직원들 사이에 본사 정규직 전환에 대한 요구가 있는지, 고용 안정을 위해 어떤 채용 형태가 유리한지 심층적으로 검토해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LG유플러스도 2500여 명의 인터넷 설치·수리 기사를 고용하고 있는 협력업체와 서비스센터에서 고용 관련 불만 사항은 없는지 파악에 나섰다.

영업시간이나 대형 점포 인허가 문제로 규제를 받아왔던 대형 유통업체들은 긴장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한 유통업체 임원은 "백화점 하나만 해도 협력업체가 2000개가 넘기 때문에 협력업체 매장 직원들에 대한 일괄적인 정규직 전환은 어렵다"며 난색을 표명했다. 삼성전자와 LG전자 역시 기존 협력업체 사장들과의 오랜 거래 관계가 훼손될 것을 우려해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재계 관계자는 "일괄적인 정규직 전환으로 서비스 비용이 오르고 결국 제품 가격에 반영될 것"이라며 "중소 협력업체 대표들의 일감을 빼앗는다는 지적도 부담스럽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