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배우→은퇴→공장 전전→40대 신입 쇼호스트 '배우 포기한 이유는…'

  • 글 jobsN 오유교

    입력 : 2017.05.15 09:38

    한때 재연배우계의 장동건으로 불린 사나이
    인기도 얻었지만 결코 이름으로 불리지 못했던 배우
    4년 전 방송계에서 자취 감춘뒤 공장 알바 등 전전
    쇼호스트로 '제2 인생' "40대도 할 수 있다, 보여줄것"

    이름은 몰랐지만 얼굴을 보니 알 것 같았다. MBC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이하 서프라이즈)’ 재연배우로 친숙한 이수완(41·이중성에서 개명)씨였다. 그는 ‘본명으로 불리지 못하는 연예인’이었다. 각종 시사·오락 프로에서 특정 상황을 재연하는 데 출연하는 연기자를 재연배우라고 한다.

    그는 이름 대신 ‘서프라이즈 걔’로 통했다. 재연 장면이 많은 프로그램인 서프라이즈에서 매번 다른 인물을 연기했다. 그러나 사람들이 정작 이름은 모른다는 이유에서 나온 별칭이다. 포털사이트 네이버 연관 검색어조차 ‘서프라이즈 걔’였다. 

    서프라이즈 출연 시절 이수완씨(왼쪽). 오른쪽은 그의 개명전 이름인 이중성 검색 결과/MBC·네이버 캡처

    어느샌가 방송가에서 자취를 감췄던 이씨는 2016년 공영홈쇼핑 공채에 합격, 연수를 거쳐 지난 3월부터 근무 중이다. 배우 대신 쇼호스트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한 그를 만났다.

    ◇끝이 보이지 않았던 ‘무명’의 사슬 

    방송가를 떠난 이유에 대해 이씨는 “연기, 노래, MC까지 할 수 있는걸 다 해봤지만 보이지 않는 벽에 부딪힌 느낌이었다”고 했다. “가슴에 손을 얹고 최선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다. 새로운 길을 가야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그는 1999년 브로드웨이 42번가로 뮤지컬에 데뷔했다. 2002년 가수 박효신의 ‘좋은 사람’ 뮤직비디오 출연을 시작으로 방송에도 얼굴을 비추기 시작했다. 

    방송인 시절 꾸준히 뮤지컬 활동을 했던 이수완씨/본인 제공

    방송인 시절에는 일주일 내내 눈코뜰 새가 없었다. 고정 프로그램이 매주 3~4개는 있었고, 한창 일할 때는 16일 연속 밤샘 촬영을 한 적도 있었다. 바쁜 스케줄 덕분에 월 400만원 이상의 수입을 벌어들여 생활이 어렵지는 않았다.

    뮤지컬 공연도 꾸준히 병행했다. 그가 재연배우로 활약한 서프라이즈는 애증의 프로그램이었다. 곱상한 외모와 탄탄한 연기력으로 '재연배우계의 장동건'이라는 말도 들었지만 틀 속에 갇힌다는 느낌이 그를 점점 조여왔다.

    “2002년부터 11년 정도 서프라이즈에 출연했을 거예요.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딱 이 정도 수준의 역할만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취급받는게 싫었습니다. 정말 열심히 노력했는데도 보이지 않는 한계를 넘을 수 없더라고요. 물론 저보다 더 열심히 하신 분도 있으실 겁니다. 그렇다면 제가 그 자리에 있는 것이 민폐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방황하던 시절 가수로의 전업도 시도했으나 별다른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MBC 캡처

    이씨는 2013년 어느날 주변의 연락을 끊고 잠적했다. “모질게 끊지 않으면 평생 ‘서프라이즈 걔’로 살 것 같았다”고 한다. “(담당 PD의) 연락을 안 받았어요. 붙잡을 게 뻔하니까요. 정말 죄송한 일이었지만 그때는 욕을 먹더라도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방송가에서 자취를 감춘 그는 한동안 혼자만의 시간을 보냈다. 

    연기 대신 먹고 살 방법을 찾아야했다. 댄스 가수로의 변신도 시도했지만 별다른 두각은 나타내지 못했다. 반평생을 방송인으로 살았던 그에게 ‘바깥 공기’는 냉혹했다. 불혹을 바라보는 나이에 새로운 직업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겉으로 좀 어려보이더라도 주민등록증만 보면 부담감을 느끼더군요. 사회에선 ‘실제 나이’가 정말 무섭더라구요. 중년에 새로운 인생을 산다는게 쉽지 않았습니다.” 3년 가까이 방황이 계속됐다. 공장에서 일하기도 했으며, 생활비가 떨어져 지인들에게 손을 벌리기도 했다. 결혼은 딴 세상 얘기였다. 이씨는 아직 미혼이다. 

    ◇고민 끝, 목표 향해 돌진 앞으로 

    방황 끝에 떠올린 직업이 쇼호스트였다. “10년이 넘는 방송 경력을 인정해줄 곳이 생각보다 많지 않았습니다. 인생은 긴데 계속 먹고는 살아야 하잖아요. 타협점을 찾은 직업이 쇼호스트였습니다.” 인센티브 비중이 높은 것도 그에겐 매력으로 다가왔다. “(배우 시절엔) 열심히 해도 결국 실패했어요. 그러나 이 직업은 노력만큼 보상이 따라온다는 점에서 다를 것 같았습니다.”

    이수완씨/본인 인스타그램

    결심을 굳힌 이씨는 아카데미를 다니며 본격적으로 쇼호스트를 준비했다. “연예인 출신이라 대충 할 것”이라는 주변의 편견을 노력으로 극복했다. 아카데미에서 가르쳐 주는 홈쇼핑용 목소리 톤과 매너를 공부했다. 시험 대비를 위해 PT(프리젠테이션)를 하루에 5개씩, 총 100번씩 연습했다. 100가지 상품 소개를 준비한 셈이다.

    “공영홈쇼핑 공고 안내에 ‘즉석 PT’가 있었어요. 이 회사의 가장 잘 팔리는 상품이 문제로 나올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베스트 100’을 시험 전까지 모두 외워야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2016년 연말에 시행됐던 공영홈쇼핑 쇼호스트 공채 시험. 서류전형을 통과한 뒤 하룻동안 자기소개와 자유 PT, 즉석 PT를 각각 2분씩 치렀다. 시험장소는 심사위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지원자 홀로 조명을 받는 적막한 스튜디오. 웬만한 사람은 땀을 비오듯 쏟을 정도로 위압적인 분위기.

    불행히도 즉석 PT에선 ‘베스트 100 상품’에서 문제가 나오지 않았다. 고추장이었다. PT로 준비했던 비슷한 상품군을 머릿속에 그렸다. 2분간 용기, 맛, 향, 색깔 등을 다루며 제품을 소개했다. 

    “미리 준비한 멘트 두 가지, ‘얼마나 맛있게요’ ‘그래 이 맛이야~’를 중간에 섞었습니다. 홈쇼핑에서는 잘 안 쓰는 표현인데 약간 튀어보이려고 한 거죠. 열심히 하려는 밝은 모습을 긍정적으로 평가해주신 것 같습니다.”

    면접을 거쳐 최종 합격자 8명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지원자는 1200명이 넘었다. 이씨는 연수를 거쳐 지난 3월 정식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41세 신입’이 된 것이다. 매년 계약을 갱신하는 전속 프리랜서다.

    공영홈쇼핑 초봉은 3000만원 중반대이며, 2년차부터 실적이 반영되면서 인센티브가 붙는다. 판매 실적이 좋은 쇼호스트는 억대 수입을 올리기도 한다.  

    ◇41세 신입으로 살아가는 법 

    허위나 과장 상품 소개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제재를 받을 수 있다. 게다가 공영 홈쇼핑은 이름 그대로 공영성을 강조하기 때문에 자체 심의 규정이 다른 곳에 비해 더욱 까다로운 편이다. 소비자의 판단을 흐린다거나 현혹시키는 표현을 쓰지 말아야 한다. 제품군마다 쓸 수 있는 표현의 한계가 있다. 공영 홈쇼핑은 중소기업청이 설립했다. 

    직접 만난 이수완씨/jobsN
    “장어를 예로 들어볼게요. 건강식품이 아닌 음식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건강’에 대해 직접적으로 언급하면 안 됩니다. 스태미너를 챙기기 위해 찾는 상품인데 어떻게 보면 현실과는 모순되는거죠. 가장 큰 장점을 얘기를 못하는 셈이기 때문에 돌려서 표현할 방법을 찾아야합니다. 그것도 떠오르지 않는다면 먹는 시연을 할때 ‘으아~’ 이런 식으로 몸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상품의 모든 가치를 숫자로 환산해 100이라고 치면 많아야 80까지밖에 못 보여주는 경우가 많아요.” 분야는 좀 다르지만 ‘남자한테 참 좋은데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네’라는 산수유 광고도 비슷한 맥락에서 나온 카피였다. 
    쇼호스트로 '제2인생'을 살고 있는 이수완씨/공영홈쇼핑 제공·본인 인스타그램

    이씨는 “어떤 직업을 밖에서 보는 것과 안에서 실제 경험하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라며 “적정한 선을 지키면서 상품을 제대로 소개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절감한다”고 했다. 목소리나 톤 같은 방송 기술은 기본이었다. TV로 보면 쉽게 내뱉는 것처럼 보이는 쇼호스트의 말 한 마디 한마디가 알고보니 ‘내공’ 없이는 나오기 힘든 말이라고 한다. 

    41세 신입은 웬만한 학생 못지 않은 학구열을 불태운다. “선배가 대부분 저보다 어립니다. 10살도 넘게 어린 선배도 있어요. 그러나 보고 배울 점이 많아요. 처음엔 자리에 못 박아놓은 줄 알았어요. ‘왜 저렇게 공부를 할까’ 싶었는데 이제 이해가 가더라고요. 열심히 하는 후배에겐 다정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정말 날카로운 분들입니다.”

    생방송인 홈쇼핑 특성상 상품을 완벽하게 숙지해야한다. 방송 시간이 정해지면 그 전에 업체와 미팅을 한다. 방송 전후로 틈틈이 상품에 대한 공부를 한다. “타사 모니터링, 현지 시장조사, 웹서치까지 하다보면 시간이 항상 부족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일주일에 소화하는 방송은 4개 정도.

    아직은 메인 쇼호스트를 보조하는 서브 쇼호스트인 이씨는 "빨리 자리를 잡아 메인 쇼호스트가 되겠다"고 했다. ​메인 쇼호스트는 상품을 디테일하게 보여주고 설명하는 역할을 맡는다. 이씨 같은 서브 쇼호스트는 소품을 들고 메인 쇼호스트를 거든다. 처음엔 서브 쇼호스트로 시작, 경력을 쌓은뒤 메인 쇼호스트가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40대의 성공 보여줄 것”

    이씨는 “홈쇼핑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바꾸고 싶다”고 했다. “‘막상 받아보면 양이 적어 먹을게 없다’ ‘질이 안 좋다’ ‘다른 데서는 못 파는걸 처리한다’는 인식이 남아있는 것 같아요.” 당장 눈앞의 판매에 급급해 지나치게 포장하는 행위는 삼가야한다고 생각한다. “정말 좋은데 가격이 저렴한 제품도 많습니다. 특히 ‘상생’을 모토로 삼는 우리는 중소기업 업체 제품을 거래하기 때문에 더욱 믿고 살 수 있는 홈쇼핑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방송계에 대한 아쉬움은 없을까. 그는 “무작정 뛰어든 직업이 아니다”라며 “정말 잘하고 싶고, 잘해야 한다”고 했다. “사실상 처음 해보는 사회 생활인데 선배들 덕분에 많이 성장하고 있습니다. 잘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에요. 어느 정도 반열에 올랐으면 몰라도 지금은 과거의 아쉬움 따위를 생각할 때가 아닙니다.

    업계에 이름난 분들처럼 제 이름을 딴 ‘이수완쇼’를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방송계에 연을 끊고 잠적할 때 느낀게 있어요. 우리 사회에 방황하는 중년이 정말 많습니다. 우리 40대 이상 중년도 ‘제2의 인생’ 도전에 불가능은 없다는 걸 보여주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잘 할 것이고, 잘 돼야합니다. 비록 인생 1막에선 쓰라린 실패를 안았지만 2막에선 희망을 보여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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