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알바왕에서 카지노 딜러로 변신한 박병건씨

  • 글 jobsN 이연주

    입력 : 2017.03.03 09:33

    2017 강원랜드 신입사원 박병건씨 
    등록금과 생활비 모두 스스로 벌어
    100가지 넘는 아르바이트 무기로 취업까지 성공
    ‘전설의 알바왕’으로 불리던 청년이 있다. 광운대 수학과를 졸업한 박병건(27)씨.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취업하기 전까지 경험한 아르바이트 수가 100개를 넘는다.  
    서빙이나 전단지 붙이기는 기본이다. 돌잔치 MC, 영화 드라마 단역 출연, 시제품 테스터, 지하철 스크린 설치, 자동차 부품공장 통근 버스 운전까지 안해본 아르바이트를 찾는 게 빠를 정도다. 1500대1의 경쟁률을 뚫고 ‘호주 펭귄 먹이주기’까지 섭렵했다. 호주 멜번에서 두달 동안 페어리 펭귄을 돌보고 1000만원을 받아 '꿈의 알바'라 불렸다. 
    전설의 알바왕이 지난 1월 2일 강원랜드 신입사원 채용에 합격했다. 초봉은 약 3700만원.(성과급 포함) 93명을 모집하는 데 2750명이 몰렸다. 이중 48명은 정선, 화순 등 폐광지역 출신이다. 채용 시 폐광지역 출신자를 우대하기 때문에 비출신자가 입사하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박씨는 아르바이트 경험을 무기 삼아 강원랜드 입사에 성공했다. 
    박병건씨. /강원랜드 제공
    ◇시급 900원부터 100만원까지 각종 알바 섭렵 



    첫 아르바이트는 2008년 고1 때 ‘학생복 모델’이었다. 184cm 훤칠한 키 덕에 대회에서 1등을 차지했다. 당시 인기 아이돌 소녀시대 윤아, SS501과 1년 동안 전속 모델로 활동했다. 대구에 있는 경북대에 진학하라는 담임 선생님과 부모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서울에 있는 광운대 수학과에 입학했다. “본선에 참가하기 위해 상경했다 처음 본 서울의 웅장함에 빠졌어요. ‘등록금과 생활비를 스스로 벌 테니 서울에 가겠다’고 했죠.”



    대학에 입학한 후 본격적인 ‘알바 인생’이 시작됐다. 학기 중에는 정기적인 알바를 하기 힘들었다. 평일에는 하루, 이틀만 하는 단기 알바를 주로 했다. 대신 주말마다 정기적으로 돌잔치 MC를 했다. 일주일에 3~5개씩 아르바이트를 했다. 한달에 평균 100만원을 벌었다. 



    한국 기네스북에 오른 ‘시급 100만원’ 알바까지 경험했다. 아르바이트를 기획해 실천하면 상금을 주는 구인구직 사이트의 공모전에 당선되었기 때문이다. 5시간 동안 직업 사무소에 찾아오는 사람을 상담하고 4500원을 받은 적도 있다. 시급으로 따지면 900원.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다양한 경험’을 한다는 생각이었어요. 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상대방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키웠습니다. 아르바이트를 안 하면 허전하고, 하고 싶어 안달이 났습니다.” 
    호주에서 '펭귄 먹이주기' 아르바이트할 때 박병건씨 모습 /박병건씨 제공.
    학교생활에도 충실했다. 과 대표, 학교 홍보대사로 활동했다. 학점은 4.5만점에 3.7점. 성적장학금과 동문회 장학금, 외부 장학금을 합해 장학금을 11번이나 탄 모범생이었다. 8학기 등록금을 아르바이트와 장학금으로 충당했고, 한달 17만원짜리 고시텔에서 보증금 1000만원, 월세 40만~50만원하는 원룸으로 이사했다. 부모님께 손 벌리지 않고 명절 때마다 10만~20만원씩 용돈을 드리고 한달에 2만원씩 주택청약도 넣었다. 입출금 내역이 많아 갖고 있는 통장 수가 16개다.



    관광·호텔 쪽에 취업하기로 했다. 서비스직이 천직이라고 생각하던 차에 리콴 유 싱가포르 총리의 자서전을 읽었다. 리콴 유 총리는 작은 도시국가였던 싱가포르의 경제성장을 이끈 인물이다. 



    “도덕적으로 엄격하기로 유명한 싱가포르는 카지노, 컨벤션 같은 관광 산업으로 연평균 경제성장률 10%를 달성했어요. 처음에는 카지노를 ‘도박’이라고 부정적으로 생각했습니다. 윤리적으로 운영하면 성장잠재력이 큰 산업임을 깨닫고 매력을 느꼈습니다.” 
    전단지 부착 알바할 때 모습(왼쪽)과 헤어 모델 알바할 때 모습 /박병건씨 제공
    ◇한 문항에 여러 가지 일화 넣은 ‘산만한 자소서’가 탈락 원인 
    신HSK(중국어공인시험) 5급까지 더해 남부럽지 않은 취업 ‘스펙’이었다. “주변에서 ‘너는 학점도 좋고 알바 경험도 다양하니가 좋은 곳에 취업할 거야’라며 비행기를 많이 태웠어요. 자기소개서에 늘 ‘이런 경험도 있고 저런 경험도 있다’며 자신을 뽐냈죠.”
    자신감은 부담감으로 바뀌었다. 2015년 말에 지원한 8곳 인턴 채용에서 모두 탈락했다. “최선을 다하고 열심히 했으니까 당연히 붙을 거라 생각했어요. 하지만 취업이 쉽지 않았습니다.” 
    다양한 아르바이트 경험은 장점이자 독이었다. 자소서에 ‘쓸게 없다’고 고민하는 다른 취업준비생과 달리 쓸 이야기는 많았다. 한 개 문항에 지나치게 많은 이야기를 담은 게 문제였다. “한 개 일화만 넣자니 나머지 일화가 아까웠어요. 많은 경험을 했다는 걸 어필하고 싶어서 한 문항에 3~5개 일화를 줄줄이 나열했습니다. ‘뭣이 중헌지’를 몰랐어요.”
    강원랜드 입사 지원을 앞두고 자기 자신과 기업 인재상을 분석했다. 100가지가 넘는 아르바이트, 대외활동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문서로 정리했다. 아르바이트 이야기를 적재적소에 배치하되 단 ‘한 개’ 일화만 썼다. 자소서는 총 4문항, 각 문항 당 글자 수는 500자였다.
    “청렴성을 묻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5만원 신권이 나온 지 얼마 안 됐을 때였어요. 영등포에 있는 편의점에서 5000원짜리 물건을 사고 만원을 냈는데 알바생이 제게 5만원을 거슬러줬습니다. 지하철을 타고난 다음에 알았습니다. 저도 알바를 가던 중이라 시간이 없었어요. ‘그냥 모른 척할까’하는 유혹도 스쳤죠. 그런데 편의점 알바생이 모자란 돈을 메워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까 남의 일 같지 않았습니다. 점포에 전화해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4만 5000원을 지점장 계좌로 보낸 적이 있습니다.”
    KBS드라마 '드림하이' 엑스트라 알바 때(왼쪽)와 돌잔치 MC모습 /박병건씨 제공
    ◇압박 질문에도 당황하지 않을 수 있는 여유
    필기전형은 NCS와 영어시험으로 이루어져 있다. 취업준비생이 ‘멘붕’에 빠질 만큼 어렵기로 유명하다. 2015년 하반기 채용에서는 2654명 지원자 중 필기전형에서만 2300여명이 탈락한 적도 있다. 
    NCS는 한시간 반 동안 10개 영역에서 각 20문항씩 총 200개 문제를 풀어야 했다. 한 문제를 2분 안에 풀어야 하는 시간 싸움이었다. 영어시험도 토익과 유형이 비슷해 시관 배분이 중요했다. 
    ‘시간 관리’에는 자신 있었다. 아르바이트, 학업, 대외활동을 함께 하면서 늘 시간이 없었다. 시간 관리를 하지 않으면 아르바이트에 지각하거나 공부할 시간이 모자 랐다. 단 5분의 시간도 허투루 쓰지 않았다. “이동시간에는 버스든 지하철이든 책이나 노트를 꺼내서 한문장이라도 읽었어요. 걸을 때는 영어나 중국어를 들었습니다. 시간이 없으니까 간절하게 공부할 수밖에 없었어요.” 
    학교 도서관에 있는 NCS 책을 빌려 한권을 하루 혹은 이틀 안에 모두 풀었다. ‘내 책’이 아니기 때문에 책을 빨리 봐야 한다는 조급함이 집중력을 끌어올렸다. 초시계로 시간을 맞춰두고 모의고사를 봤다. 자신 있는 문제부터 풀었다. “NCS 문제를 풀 때 숫자 계산 같은 자신 있는 문제부터 확실히 풀고 넘어갔습니다. 아르바이트를 할 때도 그래요. 잘하는 일을 실수 없이 끝내는 게 중요합니다.” 
    자동차 공장에서 부품 조립 아르바이트할 때(왼쪽)와 텔레마케터 아르바이트할 때 모습 /박병건씨 제공
    1차 면접은 상황대처면접. 난감한 상황을 주고 어떻게 대처할지 1분 동안 브리핑을 하는 면접이었다. ‘고급 여성 의류 브랜드 점원이다. 옷에 립스틱 자국을 묻혀 온 손님이 환불해달라 요구할 때 어떻게 하겠는가’라는 질문이 나왔다. 실제 경험에서 우러나온 답변을 했다. 
    “고객이 구입했던 제품보다 비싼 제품을 추가 금액을 내고 ‘교환’하게끔 합니다. 환불 제품은 제가 직원 할인가로 사서 세탁 후 가족이나 지인에게 선물해주겠습니다. 이런 고객은 ‘블랙컨슈머’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주의 깊게 대처해야 합니다.” 
    2차는 임원진 면접이었다. 아르바이트 경험은 박씨를 돋보이게 했다. 동시에 면접관의 ‘압박 질문’ 타깃으로 만들었다. 자칫 ‘참을성 없이 쉽게 그만두는 사람’으로 보이는 탓이었다. 또 아르바이트는 취업준비생들이 쉽게 지어낼 수 있는 경험이었다. 면접관은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수많은 사람을 만났지만 긴장을 많이 하는 편입니다. 말을 제대로 못하면 억울할 것 같았어요. 어디서, 어떻게, 무엇을, 누구와 함께 했는지 떠올리며 답변을 달달 외웠습니다.” 
    4월까지 연수를 받고 나면 카지노 딜러로 활동한다. 카지노 규칙, 칩이나 카드를 다루는 기술은 아직 관광·호텔을 전공한 동기보다 뒤처지기도 한다. 하지만 편의점, 서빙 알바를 하면서 터득한 빠른 계산과 암기능력, 돌잔치 MC를 하며 기른 순발력으로 부지런히 배우고 있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제가 경험한 모든 것들은 어디서도 살 수 없습니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관광·카지노 산업 성장에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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