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중퇴 미국서 창업 매출 100억 '눔' 정세주 대표가 '수백억 부자의 길' 포기한 이유

글로벌 4600만명이 살 빼는 건강관리 앱 '눔 코치'
창업 7년차 때 회사 매각 제의 거절 '수백억 포기'
"스타트업은 이익률보다 성장이 우선"

“사람들이 살을 빼는데 얼마나 많은 돈을 쓰는가. 한달 10달러 사용료를 내고 00서비스를 쓰는 건 행운이다”(뉴욕타임즈)

뉴욕타임즈가 호평한 이 서비스는 무엇일까. 정세주(37) 눔(NOOM) 대표가 만든 ‘눔 코치’ 건강관리 애플리케이션이다. 눔 코치는 미국·일본·독일·한국 등 14개국에서 4600만명이 가입한 글로벌 서비스다. 사용자가 매일 앱에 기록하는 식습관과 운동량을 바탕으로 헬스 트레이너, 영양사들이 실시간 채팅으로 코치해주고 목표 체중에 도달하게 도와준다.

여수 출생→음악 CD 사업→홍익대 중퇴→뉴욕행→아르바이트 생계유지→2007년 창업→2012년부터 3년 8개월간 구글 플레이스토어 건강운동 앱 매출 세계 1위→2014년 매출 100억 달성….

정 대표는 흙수저 한국 토종 청년도 세계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최근엔 빠른 속도로 성장하던 눔이 과거와 달리 주춤거린다는 지적도 있었다. 최근 2년간 매출이 100억원 언저리를 맴돌았기 때문이다.

성장이 끝난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그러나 눔은 최근 대박을 치면서 제 2의 고속 성장기에 진입했다고 선언했다. 미국 정부부처 질병예방본부(CDC)가 2018년 추진할 예정인 당뇨예방 사업을 따낸 것이다. 미국에서 당뇨병 전단계(pre-diabete)인 예비 당뇨 환자는 약 2200만명. 그런데 내년부터 정부가 직접 당뇨병 전단계 환자에게 눔 앱으로 체중을 빼도록 권유한다. 실제 사람들이 앱을 다운받아 이용하면 정부는 1인당 630달러를 눔에 관리비로 지급한다. 이 소식은 미국의 여러 의학 전문매체가 보도했다. 

“미국의 다른 건강관리 기업 2곳 앱 서비스와 함께 최종 사업자로 같이 선정됐어요. 토종 스타트업 중에 미국 정부의 대규모 사업을 딴 것은 눔이 처음이라 자부합니다. 2200만명 가운데 0.5%만 눔을 써도 내년에 매출 800억, 내후년 1000억을 찍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미국 창업 10년차, 글로벌 시장을 누비는 토종 청년의 도전기를 들어봤다.

 ◇ 한국 스펙경쟁 떠난 대학 중퇴생,10년 뒤 글로벌 점령

-미국 정부 사업은 어떻게 따냈나요.
“미국의 가장 큰 고민은 당뇨같은 만성질환 환자들이 늘어난다는 겁니다. 점점 사회가 고령화하고 아픈 사람이 많아지면 보험료가 천정부지로 올라갑니다. 그런데 여러 연구결과를 보면 5%의 몸무게를 낮추면 당뇨에 걸릴 확률이 58% 떨어집니다. 문제는 나이가 들어가면 살 빼는 사람이 적다는 겁니다. 당뇨 전 단계인 예비 환자들은 좀처럼 병원에 가지 않아요. 의사들도 ‘살 좀 빼라’는 단순조언만 합니다. 결국 당뇨 환자들이 급증하면서 미국 건강보험 부담이 높아질 것으로 보이자, 미 정부가 이 사업을 벌인 겁니다.”

눔은 2012년~2014년까지 경희대병원과 진행한 연구 결과로 미 정부 사업 심사를 뚫었다. 눔 코치를 6개월 이상 사용한 3만5921명 중 2만1686명(77.9%)이 성공적으로 목표한 체중을 감량했다. 이 중 23%는 체중의 10%가 감소했다는 결과였다.“ 2007년부터 한번이라도 눔에 돈을 내고 사용한 사람만 1200만명입니다. 그 분들의 체중 관리 흐름을 오랜기간 데이터로 분석해왔습니다. 이것을 당뇨병이라는 더 큰 시장으로 연결한 것입니다.”

여의도 한국 눔 지사에서 만난 정 대표는 바쁜 듯 했다. 인터뷰 도중 일본의 대형 보험사 CEO에게 전화가 왔다. “급한 비즈니스 미팅으로 일본으로 날아가야 할 것 같네요.” 연중 365일 가운데 140일만 뉴욕 본사에서 일한다. 남은 시간엔 전 세계를 누비며 영업하고 인재를 스카우트한다. 

“10년 전만해도 상상도 하지 못했던 상황입니다.” 그는 홍익대 전기전자공학부에 입학해 로큰롤 CD를 파는 음악장사로 연매출 10억을 내는 ‘대학생 사업가‘로 이름을 날렸지만 어느날 갑자기 사업을 접었다.

“초등학교 때 읽은 사업으로 세상을 바꾼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의 자서전이 머리에 떠올랐습니다. ‘사업으로 세상을 바꾸기엔 로큰롤 음악으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스펙경쟁’과 ‘안주하는 삶’이 싫었다. “열심히 공부하는 학교 선배에게 ‘나중에 뭐 할 거냐’ 물으니 그 선배는 ‘삼성 가야지’ 하더군요. 멋지지 않았습니다. 한국에서 창업해도 ‘SKY’대 배경이 없으면 좋은 인재를 모을 수 없습니다. 그게 싫었습니다. 학벌과 무관하게 성공할 수 있다는 미국으로 2002년 무작정 건너갔습니다. 

미국 뉴욕에서 월세 350달러짜리 허름한 집에 살며 수세미,떼수건,방향제를 팔아 돈을 모았다. 1000만원을 모은 뒤 구글 엔지니어였던 아텀 페타코프(공동창업자)를 만나 창업을 준비했다.

처음부터 잘 풀리진 않았다. “방글라데시 사람이 한국에서 사업해 보겠다는데 잘 되겠습니까. 똑같은 이치입니다. 하루 3시간 자면서 남들보다 2배 이상 노력했습니다." 

헬스케어를 스마트폰과 결합해 뭘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눔을 떠올렸다. 스마트폰으로 실시간으로 운동량을 체크하고, 식습관을 통제하는 최초의 서비스 눔은 다이어트에 실패한 수많은 사람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2008년 11월 출시한 이후 2013년 누적 다운로드 1680만건을 기록했다. 월 10달러를 내는 유료 모델도 안착했다.

◇창업 7년차, 수백억 부자의 길 포기

그러나 정 대표는 “창업 7년차인 2014년 위기가 왔다”고 했다. “사람들이 게임이나 엔터테인먼트엔 큰 돈을 씁니다. 그러나 몸이 심각하게 아프지 않은 이상 사람들이 살 뺀다고 돈을 많이 쓰진 않습니다. 4000만명 선에서 가입자가 더 이상 늘지 않았습니다. 성장에 한계가 부딪힌 겁니다.”

-이사회에서는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회사를 매각하자고 했습니다. 실제 이름만 대면 알만한 미 글로벌 기업들이 거액의 인수제의를 해왔거든요. 구체적으로 밝히기 어렵지만 제 지분으로 수백억원을 벌 수 있더군요. 그러나 회사를 더 키우기 위해 제의를 모두 뿌리쳤습니다.”

-앱을 만드는 많은 IT 사업가들이 회사를 매각해 거액을 벌고 싶어하지 않습니까.
“실리콘밸리에는 앱으로 대박을 내고 대기업에 수천억에 팔아 단기간에 부자 된 창업자가 많습니다. 그러나 매각한 회사가 대기업 품에서 망하는 경우를 수도 없이 봤습니다. 그건 싫었습니다. 또 회사를 안 팔고 가만히 월 10달러를 사용자에게 받으면 그런대로 쏠쏠하게 돈을 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비즈니스 없이 그대로 안주하면 그냥 그런 ‘중소기업’으로 끝납니다. 그것도 싫고 두려웠습니다.

스타트업에서 중요한것은 이익률보다 성장이라고 생각합니다. 회사에 한계가 보이는 순간 인재들이 떠납니다. 매출 100억 중에 20억 남는 게 뭐가 중요합니까. 차량 공유업체 우버를 보세요. 우버가 투자해 날린 돈은 3조가 넘습니다. 그래도 인재가 넘쳐납니다. 회사가 계속 성장해 미래를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IT 스타트업은 적자가 나더라도 하늘을 찌르는 로켓처럼 수직으로 커 나가야 합니다. 찔끔 매출 100억짜리 회사 만들고 끝낼 거면 시작도 안 했습니다. 헬스케어에서 세계 최대 사용자 데이터베이스를 가졌는데 왜 팝니까.”

2015년 10월 정 대표는 안정적인 ‘월 10달러 사용료’ 수익모델을 없앴다. 대신 월 사용금액을 45달러로 올렸다. “그동안 눔은 인공지능과 데이터 기반으로 체중관리를 도왔습니다. 실제 헬스케어 전문가를 고용해 실시간 채팅을 시작했습니다. 영양사, 피트니스 코치,의사를 직접 고용해 서비스의 질을 높인 겁니다.”

서비스 질을 높이자 미국 최대 보험사 애트나 등 국내외 민간 기업들에서 사업제휴 요청, 후속 투자가 들어왔다. 최근 대형 정부 사업까지 따내자 인재들이 몰려 오고 있다. 회사에 하버드·MIT·프린스턴·스탠퍼드 출신 등 명문대 출신이 수십명에 달한다. “매주 2~5명씩 뽑고 있습니다. 올해만 150여명 이상 채용합니다.” 목표는 매출 1000억 회사를 만들고 상장하는 것이다.  

◇ 해외 인재들 구하려면 페이스북, 텐센트와 경쟁

그에게 어린 아들 둘이 있다. ‘아들이 나중에 사업하면 좋겠냐’고 묻자 단호하게 말했다. “말릴 겁니다. 너무 힘?니다. 지금까지 아들 기저귀 5번 갈아봤습니다. 해외 창업은 특히 만만치 않습니다. 회사에 유능한 직원들이 많습니다. 실리콘밸리에는 수억원 연봉 받는 IT 개발자들을 구하지 못해 안달입니다. 그들을 스카우트해오면 일반 상식으로 통제하기 어려울 때도 많아요. 한국말로 ‘싸가지’가 없다는 거죠. 그들이 모르는 한국의 대학을 중퇴한 제가 리더십으로 이겨야 합니다.”  

-어떻게 이끕니까.
“한국에서 서울대 나온 직원도 사장에게 싸움 못 겁니다. 여기 문화는 달라요. 그럴 때 같이 싸움닭처럼 싸워줘야 합니다. 나아가 똑똑한 외국인 직원들을 포용하려면 회사 비전이 시쳇말로 ‘○나’ 커야 합니다. 마음만 먹으면 다른 회사로 갈 수 있으니까요. 한국식의 리더십도 때로 필요해요. 회식하면 맥주에 소주를 탄 ‘소맥’ 폭탄주를 한잔씩 주기도 합니다."

-트럼프로 미국 대통령이 바뀌면서 미국 기업가들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트럼프 당선 20분만에 투자자에게 전화오더군요. ‘미국 정부 당뇨예방 사업이 깨지는 것 아니냐’고 말입니다. 그러나 오바마 헬스케어는 보험혜택을 그동안 못 받는 취약계층에게 확장하는 것입니다. 미 질병관리본부의 사업은 당뇨를 예방해 보험료를 낮추자는 취지라서 관련이 없어요. 요새 고민은 트럼프 대통령이 새롭게 바꾼 해외 전문직의 취업 비자(H1-B) 규제입니다.“

-어떤 문제가 있습니까.
”그동안엔 연봉 6만5000달러만 주면 해외에서 인재를 데려올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기준을 13만달러로 올렸어요. ‘진짜 고급인력 아니면 데려오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우리 회사의 일부 해외 직원들이 연봉 올려달라고 해 골치 아픕니다. 사실  요새 글로벌 시장에서 IT회사 과잉경쟁으로 개발자 등 전문직 연봉이 너무 올랐습니다. 지금까지 페이스북만 이기면 됐는데 이젠 텐센트와 알리바바까지 이겨야 합니다. 페북과 구글은 컴퓨터공학 학사 졸업자에게 연봉 1억, 1억 2000만원 주거든요? 텐센트는 3억 줘버립니다. 우버는 2억 줍니다. 인재유치 경쟁에 피 터집니다.“

-만약 대학시절로 돌아간다면 해외 창업할 겁니까.
”물론입니다. 사실 언제 망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잠이 안 올 때도 많습니다. 그러나 창업은 인생의 ‘안전지대’(safety zone)를 계속 넘어서는 희열 넘치는 도전입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매일 관성을 깨며 사는 것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