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 못 견디는 일 참았더니 성공" 공고 나와 용접으로 '세계 제패'

  • 글 jobsN 이병희

    입력 : 2017.01.24 09:10

    고3, 휴학 뒤 용접 배워
    1년 만에 전국대회 우승, 이듬해 올림픽 금메달
    힘든 일 참아내야 빛, 용접으로 봉사하고파

    김형준(29)씨는 용접분야 세계 최고 기술자다. 2006년 4월 경북지방기능경기 용접분야 1위를 시작으로 같은 해 9월 전국기능경기대회에서 1위에 올랐다. 이듬해 11월 일본에서 열린 국제기능올림픽에서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2015년, 최연소로 지방 기능경기대회 심사장을 맡기도 했다. 심사장을 맡았을 때 나이가 스물일곱에 불과했다.

    “다른 사람들이 잘 하지 않으려는 분야에 도전해야 성공 가능성이 크다고 봤습니다.” 그는 힘들지만 참고 용접을 계속했던 게 성공하는 데 도움이 된 것 같다고 했다. 

    공고를 졸업하고 그가 입사한 곳은 현대중공업. 중앙기술원 생산기술연구소 용접 연구실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12년 차 용접 베테랑이다.

    2007년 국제 기능올림픽에 참가한 김형준씨./김형준씨 제공

    ◇ 고3, 휴학 뒤 용접 배워

    -용접은 언제 시작했나요

    “고3 된 해 3월이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취업을 잘 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때였어요.”

    공고를 나와 취업할 수 있는 곳은 많지 않았다. 생산직으로 공장에 들어가는 방법도 있었지만, 단순 조립 업무만 하다 회사 생활을 끝내고 싶지 않았다. 기술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친구들과 이야기해보니 용접을 배우면 취직이 잘 된다고 하더라고요.”

    -고3이면 늦은 나이 아닙니까

    “대부분 공고 친구들은 입학해서 바로 배웁니다. 늦어도 고1 말이나 고2 초에는 해야 합니다. 늦어도 한참 늦었죠. 선생님께 찾아가서 ‘용접 배우고 싶습니다’ 했더니 ‘이제 와서 뭘 하겠느냐’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했나요
     
    “휴학했습니다. 다행히 학교에서 용접 훈련을 받을 수 있게 배려해주셨어요.”

    1년간 휴학생 신분으로 용접을 배웠다. 오전 8시에 등교해 저녁 10시까지 용접만 했다. “밥 먹는 시간 빼고 계속했습니다. 대회를 앞두고는 새벽까지 훈련하는 일도 많았습니다.” 체력 단련을 위해 아침에는 운동장을 열바퀴씩 돌았다.  

    대회에서 과제로 나오는 3~4가지를 집중적으로 연습했다. “기포 없이 매끈하게, 엑스레이 촬영으로도 결함을 발견할 수 없게 용접하려고 애썼습니다.” 물이 새지 않는 용기를 만드는 훈련도 했다.  

    용접실에서 용접 실습하고 있는 김형준씨와 학생들 모습./김형준씨 제공

    ◇ 1년 만에 전국대회 우승, 이듬해 올림픽 금메달

    -힘들지 않았습니까

    “여름에 더 덥고, 겨울에 더 추운 일입니다. 체력이 떨어진다든가 하는 건 버티면 되는데, 추위나 더위는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용접할 때 바람이 세게 불면 불량이 생길 수 있다고 했다. 아무리 더워도 선풍기나 에어컨을 켤 수 없다. 겨울에도 난방을 할 수 없다. “용접실은 건물 안에 있어도 항상 환기를 해야 하거든요. 쇠는 추울 때 더 차가워지는데, 그걸 만지는 게 고역이었습니다.”

    -1년 만에 지방, 전국 대회에서 우승을 했네요

    “지방대회는 운이 좋았습니다. 2등과 점수가 같았거든요. 이럴 경우에 생일이 빠른 사람을 우대해주는 규정이 있다고 합니다. 저는 1년 휴학했잖아요. 그래서 1등이 된 거죠.”

    전국대회에서는 5위인줄 알았다가 1등으로 순위가 바뀌기도 했다. “3일 동안 대회를 치렀는데, 장려상이란 발표가 났어요, ‘나는 이 정도 밖에 안되는구나’ 낙담하고 있는데 점수 합산이 잘못됐다고 하더니 1등으로 바뀌었습니다.”

    전국기능대회 우승 후 현대중공업에 용접 분야 특채로 입사했다. 초봉 3000만원. 국내 대회 우승자는 중공업 회사로 스카우트 되는 일이 많다고 했다. 

    2007년 국제기능올림픽에서 김형준씨가 일본, 캐나다 국가대표와 공동 금메달을 받고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김형준씨 제공

    -입사하고 어떤 일을 했나요

    “세계 대회를 준비했습니다. 학교에서 훈련하듯이 또 연습해습니다. 국내 전국대회는 1년에 한 번 있지만, 기능올림픽은 2년마다 열립니다. 전년도 우승자와 국가대표 자리를 놓고 다시 경쟁해야 했습니다.”

    2005년도 전국대회 우승자를 제치고 국가대표가 됐다. “그분이 회사(현대중공업) 선배셨어요. 선배를 생각해서라도 우승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습니다.”

    2007년 기능올림픽 용접 분야에서 이례적인 결과가 나왔다. “은메달, 동메달이 안 나왔어요. 일본·캐나다 선수와 제가 공동 금메달을 받았습니다.”

    용접 과정을 살펴보고 있는 김형준씨 모습./김형준씨 페이스북 캡처

    ◇ 힘든 일 참아내야 빛, 용접으로 봉사하고파

    -포상이 있었습니까

    “정부에서 동탑산업훈장과 상금 5000만원을 받았습니다. ‘계속종사장려금’(연금)이라는 제도가 있습니다. 기능올림픽 우승자에게 평생 연간 1200만원을 주는 제도입니다. 제가 용접 일을 멈추지 않으면 계속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회사에서도 상금 1000만원을 주고 직급을 하나 올려주더군요.”

    생산직 7급에서 1년 만에 6급이 됐다. 이런 기회가 아니라면 2년 이상 기다려야 진급이 가능하다.

    -지금은 어떤 일을 합니까

    “연구원들은 ‘용접표준’을 만듭니다. 배를 용접하기 전에 실내에서 모의실험을 합니다. 실제 현장에서 사용하는 도구를 이용합니다. 용접된 부분의 강도나 형태 등을 수치화하고 선주에게 ‘이 정도로 만들면 된다’는 허락을 받습니다. 현장 직원들은 그 범위를 벗어나지 않게 작업을 합니다.”

    함께 일하는 연구원 12명 가운데 세계대회 경험자 3명, 국내대회 경험자는 5명이다. “모두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자분들이시죠. 대회에 나가지 않으신 선배님들도 이 분야에서 수십년을 일하신 분들입니다.”

    지난해 그의 연봉은 5500만원이었다. 2016년 현대중공업 직원 평균 연봉(7827만원)을 밑돌았다. 연구원은 야근이나 특근이 없어 수입이 적은 편이다. 

    김형준씨가 받은 전국·세계대회 상장과 훈장증./김형준씨 제공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있나요

    “용접 학원을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정부가 지원하는 직업학교도 많지만, 일반인이 쉽게 접하기는 어려운것 같습니다. 배우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 찾아올 수 있는 기술 전수 시스템을 만들 계획입니다.”

    그는 외국에 나가 용접으로 봉사하고 싶다고도 했다. 지금은 회사 근처 마을에 나가 농기구를 수리해주거나 집을 보수하는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고등학교 때 급식소 아주머니들이 주방기구 떨어지면 저한테 부탁하셨어요. ‘학생 이것 좀 고쳐줄 수 있어?’ 하고요. 고쳐드리면 고맙다고 하시는데 그 기분을 잊을 수가 업습니다.”

    -용접을 배우려는 학생들에게 조언한다면

    “힘든 일입니다. 그만큼 인내심도 필요합니다. 고등학교에  나가 학생들에게 상담 활동도 하고 있는데 생각대로 안된다고 금세 좌절하는 학생들도 있습니다. 그러면 안 됩니다. 아무 말 없이 묵묵히 하고 궁금한 거 하나 더 물어보는 친구들이 나중에 좋은 결과를 내더라고요. 힘든 일, 남들이 잘 견디지 못하는 일을 참고 해낼 때 성공에 더 가까워지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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