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만에 좀비 전락, 극한직업 '수습기자' 체험기

  • 글 jobsN 이연주

    입력 : 2017.01.19 09:16


    외신도 주목한 한국 언론사의 기자 훈련 체계
    화장은 사치, 씻을 시간도 부족해
    극한 상황으로 몰고가는 혹독한 생활

    2010년 미국 LA타임스는 한국의 ‘수습기자’에 대한 특집기사를 실었다. 한국에선 언론사 입사 후 정식 기자가 되기 전 혹독한 훈련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른바 수습기자다. 수습 기간은 언론사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은 6개월이다.
     
     수습기자는 경찰서에서 먹고 자면서 하루 내내 사건을 취재한다. LA타임스는 수습기자들이 묵는 경찰서 내의 숙소를 ‘부트 캠프(boot camp)’라 불렀다. 군대의 신병 훈련소와 비슷하다는 뜻이다. 하루 3~4시간 자면서 제대로 씻지도 못한다. 선배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하라고 요구하며 어린 기자들을 극한상황까지 몰아붙인다. 이런 한국의 수습기자 제도를 군대 훈련소라 묘사한 것이다.
     
     기자는 인턴을 거쳐 2016년 7월 잡스엔에 정식 채용됐다. 그해 12월 조선일보 수습기자들과 함께 한 달 동안 수습 체험을 했다. 기자를 꿈꾸는 이들을 위해 그 과정에서 겪은 이야기를 적는다.

    한국의 수습기자 제도를 보도한 미국 LA타임스(왼쪽). 오른쪽은 기자가 묵은 동대문경찰서 기자실의 모습/LA타임스 홈페이지 캡처·jobsN


    ◇사스마와리? 하리꼬미? 시작부터 낯선 수습기자
     
    수습 기간 한 달간 숙소는 동대문경찰서였다. 동대문경찰서는 ‘종로혜화북부 라인’에 속한다. 기자들은 서울의 지역을 덩어리로 묶어 ‘라인’으로 분류한다. 언론사마다 라인 분류는 조금씩 다르다. 보통 6~7개로 라인을 나눠 담당자를 정한다. '마포 라인(마포, 서대문, 서부, 은평)' '영등포 라인(구로, 금천, 영등포, 강서, 경찰서)' 등이다.

    동대문, 강북, 혜화, 3개의 경찰서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취재했다. 경찰서만 취재하진 않는다. 담당 경찰서들이 관할하는 지역에 있는 주요 병원 대학 장례식장 등이 모두 취재처다.
     
    일단 처음 수습을 시작하면 말을 알아듣기가 힘들다. 선배가 건 전화를 받으면 들리는 단어의 상당 부분이 알 수 없는 일본어다. ‘사스마와리’, ‘하리꼬미’, ‘반까이’, ‘우라까이’, ‘도꾸니끼’, ‘야마’. 처음엔 낯설었던 이런 단어들이 점차 익숙해지면 수습 생활에 적응하고 있는 것이다. 
     
    하리꼬미는 터를 잡는다는 뜻으로 경찰서에서 숙식하는 것을 가리킨다. 사스마와리는 ‘경찰 기자’의 일본식 표현. 도꾸니끼는 낙종, 쉽게 말해 남들보다 먼저 주요 사건을 전하는 특종의 반대말이다. 낙종한 기자는 인생이 불행해진다. 다시 기를 펴고 살려면 반까이를 해야 한다. 반까이는 특종성 기사를 써 낙종을 만회하는 것이다. 우라까이는 남의 기사를 베낀다는 의미다. 야마는 기사의 주제다.
     
     태어나서 하루 24시간이 이렇게 길게 느껴진 적이 없었다. 새벽 7시에 일진에게 보고를 해야 한다. 그전에 미리 보고할 내용을 문서로 만들어 올려놓아야 한다. 밤새 일어난 일 중 기사가 될만한 사건을 보고한다. 이 첫 보고가 가장 중요하다. 보고 내용이 부실하면 하루가 피곤해진다. 적어도 새벽 4시에는 일어나야 첫 보고와 서면보고를 그런대로 만들어 놓을 수 있다.
     
     첫 보고 이후 2시간 간격으로 보고를 했다. 마지막 보고 시각은 새벽 1시. 그러나 내용이 부실하면 추가 보고를 해야 한다. “한 시간 이따가 다시 보고해.” 이 말을 계속 듣다가 새벽 4시 넘어까지 보고를 한 적도 있다. 수습 기간 내내 하루 3시간 이상 잠을 잔 적이 없다.

    매일 연습기사도 2개씩 작성했다. 신문에 나온 기사를 베껴 쓰는 필사도 매일 2개씩. 이건 머리를 써지 않으니 마음은 편했다. 일주일에 단 하루, 토요일에만 경찰서 아닌 곳에서 자는 외박과 휴식이 가능하다.

    수습기자들은 기사를 그대로 베껴 쓰면서 기사 형식을 익히기도 한다. 사진은 모두 실제 기사를 베껴 쓴 모습/jobsN


    ◇대학 합격 발표보다 떨리던 순간
     
     
    2시간 간격의 보고 시각이 다가올 때마다 몸이 떨리며 머릿속이 하얘진다. ‘보고할게 없는데 어떻게 하지….’ 아무 내용이나 보고라고 말할 수는 없다. 신문에 쓸 가치가 있어야 한다. '오죽하면 신문에 나겠어'란 말을 한다. 웬만하면 뉴스거리가 아니다. 그런 사건을 찾아야 한다. 그런데 쉽지 않다. 늘 보고 거리가 없다. 
     
    어떻게든 뭐라도 보고해야 한다는 생각에 나도 모르던 용기가 생긴다. 경찰서 형사 당직실에 무작정 들어간다. 죄를 지어야만 간다고 생각했던 경찰서, 마냥 무서워 보였던 경찰이 이제는 뭐라도 뜯어내야 하는 취재원이다. 
     
    유리문 앞에서 눈이 마주친 형사. 초인종을 눌렀다. “기자입니다 간밤에 혹시…” 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형사가 피한다. 더 이상 떨어질 곳도 없는 나를 좌절하게 만드는 뻔한 한 마디. “조용합니다~” “없습니다~” 경찰끼리는 사이좋게 야식을 먹다가도 기자가 들이닥치면 마치 귀신이라도 지나간 것처럼 조용해진다. 친구였으면 꿀밤 한대 쥐어박고 싶다.

    쓰레기통을 뒤져봤지만 의미 없는 서류 뭉치뿐이다. 관공서에서 작성 중이던 서류나 메모를 쓰레기통에 버리는 경우가 있다. 정말 보고할 내용이 없으면 혹시 하는 마음에 쓰레기통을 엎는 기자들이 많다.  
     
    결국 보고할 게 없다. 대책이 서질 않는다. 한숨을 쉬며 택시를 탔다. 갑자기 ‘쿵’하는 소리와 함께 차가 흔들렸다. 조수석에 머리를 부딪혔다. 순간 환호성을 지를 뻔했다.
     
    ‘다치게 되면 보고 거리가 없어도 이해해주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순간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대했던 부상은 없었다. 왜 이렇게 튼튼하게 낳아주셨냐며 애꿎은 부모님을 원망했다.


    드라마 '스포트라이트', '피노키오' 등 수습기자를 소재로 한 드라마와 영화가 많이 등장했다. 영화 '열정 같은 소리 하고 있네'에서 박보영은 수습기자 도라희를 연기했다.(오른쪽) 정재영은 도라희를 괴롭히는 부장 역을 맡았다. /영화 '열정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예고편 캡처


    ◇한 달 만에 ‘좀비’로 변신

     
    일반인은 알기 어려운 독특한 세계의 '끝판왕'은 바로 숙식이 이뤄지는 기자실. 남녀 구분 없이 생활한다. 쉽게 말해 혼숙이다. 얼핏 들으면 오해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이성 간 좋은 감정이 싹트기 어렵다. 동대문 경찰서의 경우 여자는 기자 혼자뿐이었으며 나머지 5명은 모두 남자였다. 실평수로 2평 남짓 공간에 6명이 생활했다. 총 3개가 있는 2층 침대에 각기 나누어져 잠을 청했다. 여기는 인간 사회가 아니라 정글이란 생각을 했다.

    모두가 '인간 모글리(소설 정글북의 주인공 이름)'다. 일단 기자실에 들어가면 정체를 알 수 없는 냄새가 코를 찌른다. 곳곳에 옷가지와 먹다만 캔커피 쓰레기가 널브러져 있다. 바쁘고 피곤하기 때문이다. 환경도 서식하는 생물들도 모두 더럽다. 특히 수습기자란 생물은 처참한 몰골을 하고 있다.

    수건 재활용 정도는 애교다. 일주일 정도 쓰면 '좀 다른 걸 써볼까'라는 생각을 한다. 여자인 나도 수건 하나로 한 달을 버텼다. 양말을 이틀 사흘 신는 것은 기본이다. 수습 기간엔 이런 더러운 생활이 아주 자연스럽다. 다른 수습기자들도 똑같기 때문이다. 일반인의 눈으로는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처럼 보이겠지만. 수습기자의 눈으로는 보면 '지극히 평범한 일상'이다.

    다른 경찰서 기자실도 상황은 비슷하다. 종암경찰서의 경우 첫날밤을 보낸 이후 수습기자들이 화들짝 놀랐다는 소문이 삽시간에 퍼졌다. 자고 일어나보니 하얀 베개에 벌레들의 사체가 엉겨 붙어있었던 것.

    처음 밤에 들어왔을 때는 어두워서 잘 몰랐지만 밝은 아침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벌레를 베개 삼아 자고 있었던 것을 뒤늦게 안 것이다. 침대가 없어 침상에서 함께 이불을 걸치고 잠을 청해야 하는 경찰서도 있었다.

    평소 깨끗했던 사람이라도 수습으로 불리기 시작하면 달라진다. 모 언론사 남자 기자가 나를 '좀비'라고 불렀다. 여성에게 심한 호칭이지만 거울을 보니 묘하게 설득력이 있었다. 여기서 계속 살다간 무슨 병이든 병에 걸릴 것 같다. 수습기자의 ‘수’를 왜 짐승 수(獸)라고 하는지 이해가 갔다.

    하지만 인간 이하의 수준으로 살아야 하는 이 좁은 몇 평짜리 공간이 수습기자에게는 유일한 안식처이기도 하다. 선배에게 한바탕 깨지고 나서 같은 처지의 기자들과 대화를 나누며 위로를 받는다.

    특정 선배의 실명을 거론하며 뒷담화를 하거나 혹은 편의점에서 사온 맥주캔으로 하루의 고단함을 달랜다. 나중에는 기자실에 정이 들어 휴일인 토요일에도 기자실에서 지내는 수습기자까지 있었다.

    경찰서에서 수습기자가 가장 많이 들르는 곳이다. 형사들은 팀별로 돌아가며 야간에 밤을 새워 당직 근무를 한다/jobsN


    ◇지구를 떠나고 싶은 마음까지

     
    일반인이 평생 살다가 겪을까 말까 한 일을 수습기자는 매일 겪는다. 힘들다 보니 '한강에 뛰어들고 싶다'라는 농담도 서슴지 않는다. 누군가가 이런 말을 하면 다른 이가 '내가 기사는 써줄게, 보고 거리 생겨서 좋네'라는 훈훈한 대화도 오간다.
     
    가장 큰 걱정거리는 이른바 '물을 먹는 것'. 다른 언론사 기자가 단독, 특종 기사를 쓰면 '물을 먹었다'라고 한다. 한 번은 다른 언론사에서 영아 유기 사건을 먼저 보도했다.

    그 기사를 봤을 때 지구에서 내가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내가 맡은 라인에서 발생한 사건이었다. 결국 내 책임이다. 현장에 가야 하지만 사건이 발생한 곳이 어딘지도 몰랐다. 그 당시 일진과의 대화를 재구성하면 이렇다.

    일진 "(기사) 봤냐? 지금 당장 병원(사건 발생지) 가서 알아와"

    기자 (식은땀이 흐르며) "네 알겠습니다…"

    비가 하늘을 뚫을 듯이 내리던 날이었다. 마침 근처를 지나는 택시도 없었다. 30분 정도 지나자 다시 통화음이 울렸다. 순간 기지국이 박살 났으면 좋겠다는 상상까지 들었다.

    일진 "아직도 못 찾았냐?"

    기자 "네 못 찾았습니다. 빨리 찾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뒤 가까스로 무작정 사건 장소로 추정되는 곳으로 출발했다. 도중에 다시 전화가 왔다. "철수해라. 기사화하지 않기로 했다." 안도의 한숨을 내셨다. 그것도 잠시 곧 새로운 보고 거리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에 머리가 아파졌다.

    요즘 수습기자들은 토요일마다 열리는 광화문 집회를 취재하러 나간다. 원래대로라면 유일한 휴일인 토요일에 집회가 열리기 때문에 집회를 나갈 경우엔 일요일에 쉬었다./jobsN


    ◇수습 제도는 계륵 같은 존재

     
    한 달간의 수습 체험을 마쳤다. 여자지만 군대를 다녀오면 이런 기분일 것 같았다. 답답했던 굴레에서 벗어난 기분. 범죄자로 치면 형기를 마치고 감옥을 나온 기분일 것이다.
     
    수습기자 제도에 긍정적인 시각과 비판적인 시각이 공존한다. 인간을 극한의 상황으로 몰고 가는 수습 제도에는 분명 후진성이 있었다. 수습 제도를 시대에 맞게 바꾸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했었다고 한다.

    경찰서 대신 회사 사무실에서 근무를 시킨 적도 있다. 파격적으로 수습 자체를 없앤 곳도 있었다. 그러나 결국은 다시 '도루묵'. 지금도 수습들이 경찰서를 헤맨다. 수습을 마친 기자들은 훗날 새로 들어온 수습 후배들에게 말할 것이다.

    "예전에 내가 수습을 할 때는 말이야…"

    주요기업 입사가이드 바로가기
    입사시험에 나올만한 시사상식 바로가기
    기업 채용 캘린더 바로가기
    상장기업 연봉정보 바로가기
     

    채용 Q&A

    기업에 궁금한 점을 남기면 인사담당자가 선택해 답변해 드립니다.
    이전 기사 다음 기사
    기사 목록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