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만하면 평생 월 400만원 버는 이 직업은? - 고인경 수어통역사

  • 글 jobsN 김수현 인턴

    입력 : 2017.01.09 09:21


    20대부터 TV방송 수어 통역사 활동
    구글웹마스터 통역에 이어 국제 무대도 
    공용어 채택으로 관련 직종 전망 밝아

    2015년 12월 한국수화언어법이 통과됐다. 이후 한국 수화언어(이하 수어)는 한국어와 함께 우리나라의 공용어다. 2018년부터는 수어 교원 자격증도 생기고, 중고등학교에서도 선택과목으로 수어를 배울 수 있다.

    이런 제도적 변화로 인해 수어 관련 직종이 급부상할 것으로 전망된다. 대표적인 직업은 수어통역사. 우리가 흔히 뉴스를 보면 화면 아래에서 부지런히 손을 움직이는 사람이 바로 수어 통역사다. 이들은 앵커가 말하는 내용을 수어를 통해 농인(청각 장애인)에게 전해준다.

    고인경(34)씨는 국내 대표 수어 통역사다. 고씨는 25세부터 MBC 'TV 특강'의 수어 통역을 진행했다. EBS에서도 뉴스 수어 통역을 맡은 적이 있으며 현재는 MBC에서 계속 수어 통역을 하고 있다. 한국농아인협회 관계자는 "20대 중반부터 방송 수어 통역사를 맡는 건 극히 이례적인 일"이라며 "공식적인 집계를 하긴 어렵지만 역대 최연소일 것"이라고 했다.

    수어 통역사로 활동하고 있는 고인경씨/고인경씨 제공


    ◇ 한국어보다 수어를 먼저 배웠다


    -수어를 어떻게 배웠나요

    "저는 청인입니다. 귀가 들리는 사람을 청인, 귀가 들리지 않는 사람을 농인이라고 합니다. 부모님이 모두 농인이셨어요. 그러다보니 부모님에게서 수어를 글로 자연스럽게 배웠습니다. 가령 '다람쥐'라는 단어를 글로 쓴 다음 저에게 다람쥐를 뜻하는 수어를 보여주는 식이었어요. 수어를 오히려 입으로 하는말인 한국어보다 먼저 배웠죠."

    -수어통역사가 꿈이었나요

    "아닙니다. 어릴 때부터 청인이었던 할아버지 할머니와 농인인 부모님 사이에서 통역을 하다보니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직업으로 삼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어요. 딱히 꿈이 없었고 집안에서도 안정적인 직장을 원했습니다. 당시 인기 있었던 사회복지학과로 진학하게 되었죠.

    그런데 대학교 가서 패밀리 레스토랑 알바를 해보니 너무 재밌는 거예요. '아 이거다' 싶어서 졸업하고 나서 패밀리 레스토랑 매니저로 일하고 싶다고 가족에게 얘기했죠. 그런데 너무 반대가 심했어요. 결국 원래 전공과 관련이 깊은 사회복지사로 사회에 첫 발을 내디뎠습니다. 첫 근무지가 2006년 한국농아인협회 중앙회였죠."

    -그러면 수어통역사는 어쩌다 하게 됐나요

    "사회복지사로 일할 당시에 복지사업 관련 행정 업무를 맡았습니다. 그런데 2007년에 한국농아인협회 회장님의 수행 통역을 해보라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원래 통역을 맡을 예정이었던 사람이 일이 생겨 대타가 필요하다'더군요.

    제가 어릴적부터 집안에서 수어 통역을 많이 했다는 것을 알고 계셨죠. 그래서 1년간 낮에는 사회복지사, 퇴근 후엔 회장님 수행 통역을 맡았습니다. 하다보니 이게 점점 재밌고 보람이 있더군요.

    한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을 따라다니며 도와준다는게 뜻깊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때부터 이 일을 직업으로 삼자는 생각을 했어요. 2007년에 국가 공인 수화 통역사 자격증을 취득하면서 본격적으로 이 길로 들어서게 된거죠."

    방송 화면으로 안 나오는 수어통역사의 업무 공간. 세트장 뒤에 있다. 여기서 동시 통역을 진행한다./ 고인경씨 제공


    ◇ 방송 수어통역사를 25살에 시작, 파격적 발탁

    -방송 수어통역사는 언제부터 하셨나요

    "2008년부터 MBC 'TV 특강'에서 수어 통역을 시작했어요. 주말에 한 번 촬영하는 거라서 당시까지만 해도 사회복지사와 병행했어요. 2009년부터는 EBS 뉴스 통역도 병행했습니다. 그러다가 사회 복지사를 그만두고 아예 이쪽 세계로 전향했죠. 뉴스는 매일 수어 통역을 해야돼서 업무 부담이 컸거든요.

    -20대, 그것도 중반에 방송 통역을 한다는게 이례적인 일 아닌가요?

    "제 능력으로 이룬 성취이기 때문에 당당합니다. 업계가 그리 크지 않은데다 능력을 갖춘 통역사는 드물기 때문에 대부분 방송사 통역 채용은 공개 채용 방식으로 진행하지 않습니다. 주로 지인을 추천 받아 면접을 보는 형식이죠.

    추천을 통해 시험을 봤던 EBS의 경우엔 저랑 함께 추천을 받은 면접자가 저를 포함해 총 3명이었어요. 원고를 받고 5분이 지난 후에 수어로 통역하는 카메라 테스트를 받았죠. 심사는 뉴스 관계자, 그리고 방송사에서 섭외한 농인분들이 담당했어요.

    일부에서는 질투와 시기도 있었어요. '쟤는 뭔데 저 나이에 방송을 하느냐'고. 하지만 어릴 때부터 집안 교육을 통해 다져진 수어 통역 능력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급여 수준은 어떤가요

    "방송사 통역은 보통 프리랜서입니다. 일을 해서 건당으로 돈을 주는 시스템이에요. 시간당으로 치면 평균 10만원~30만원을 받습니다. 한달로 치면 정확한 금액은 기억이 안 나지만 생활하기에 불편한 수준은 아닙니다."

    수어 통역사 전향 이후 더 큰 꿈이 생겼다. 국제 수어통역사로 활동하고 싶다는 꿈이었다. 특히 '농인계의 UN(국제연합)'으로 불리는 WFD(세계농아인연맹)에서 활동하고 싶다는 목표가 생겼다. 그래서 전문적인 공부를 하기 위해 2008년부터 3년간 나사렛대 국제수화통역학과 석사 과정을 밟았다.

    국제 감각을 익히기 위해 자비를 들여  2011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린 WFD 콘퍼런스 현장을 갔다. 2015년 터키에서 열린 콘퍼런스 현장에도 갔다. 국제 공용 수어를 실제로 써 볼 기회였다.


    '제4회 세계농아인농구선수권대회'에서 국제수어 통역을 맡은 고인경씨 / 고인경씨 제공


    ◇ 본격적으로 국제무대를 누비다

    -국제공용 수어가 뭔가요?

    "이쪽 세계를 모르시면 모르는게 당연해요. 나라마다 수어가 다 달라요. 예를 들어 미국과 한국은 수어가 달라서 의사소통이 힘들어요.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고요. 그래서 국제적인 행사에서 의사소통을 위해 사용하는 국제 공용 수어라는게 있습니다. ‘International Sign(IS)’라는 국제 수어입니다. WFD는 이 IS를 공용 언어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2011년에 구글 웹마스터의 통역을 맡아서 화제가 됐었죠?

    "그때 구글 웹마스터 나종일씨가 구글코리아로 1년간 파견왔었습니다. 나씨는 어릴 적에 한국에서 미국으로 입양된 한국계 미국인 농인이에요. 수어 통역을 할 사람이 필요해 구글에서 미국과 한국 수어를 모두 할 수 있는 사람을 구했습니다. 마침 제가 대학원에서 미국 수어 과정을 이수한 상태였어요. 그래서 두 차례 면접을 거쳐 일하기로 했습니다. 처음엔 3개월만 일하자고 했어요. 근데 서로 소통이 잘 되서 1년 더 일을 했었죠."

    -또 기억에 남는 일이 있으신가요?

    "2015년엔 '제4회 세계농아인농구선수권 대회'에서 한국대표팀 담당 통역사로 파견을 갔어요. 당시 대만에서 대회가 열렸어요. 그곳에서 한국 선수들의 수어 통역을 담당했죠. 그동안 국제적으로 여러 경험을 거친 부분을 높이 사주신 덕분에 운 좋게 이런 큰 대회에도 갈 수 있었습니다. 9일간 선수들과 함께 지내면서 전혀 불편함이 없도록 최선을 다했어요. 아직도 기억에 남는 순간입니다."

    나사렛대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고인경씨 / 고인경씨 제공


    ◇ 유망직종으로 떠오른 수어통역사 "잘만하면 월수입 400만원"

    -어디서 수어를 배울 수 있습니까

    "지역마다 한국농아인협회의 지부가 있어요. 월·수, 화·목 이런 식으로 평일에 두번 진행하는 평일반이 있고요. 주말반도 있습니다. 수강료는 매우 저렴합니다. 서울 지역에 있는 서울수화전문교육원는 월 수강료가 단돈 만원입니다. 매달 300명가량의 학생들이 수업을 듣고 있어요. 강의실 접근성이 불편하신 분은 온라인 강의를 찾아서 들으면 됩니다."

    -관련 자격증 난이도는 어떤가요

    "국가 공인 수어통역사 자격증인데요. 매년 한번씩 시험이 있어요. 필기를 먼저 보고, 여기서 합격하면 실기시험을 치릅니다. 필기 시험은 농인과 수어, 한국어에 관한 지식을 다룹니다. 실기 시험은 농인의 수어 영상을 본 뒤 글로 쓰는 형식입니다. 반대로 한국어를 음성으로 듣고 수어로 동시 통역을 직접 하는 문제도 있습니다.

    지금까지 수어통역사 자격증을 취득한 사람은 1500명 정도입니다. 시험이 절대 쉽다고는 얘기할 수 없어요. 일반적으로 한국 사람이 학창 시절 내내 영어를 배워도 간단한 회화도 못하는 게 현실이잖아요. 그거랑 비슷해요. 합격률이 10%가 조금 넘습니다. 하지만 열정을 갖고 진짜 이 일을 하려는 생각을 갖고 시작한다면 자격증을 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전망은요

    "전망은 밝은 편이에요. 이혼 소송, 자녀 학교상담 등 수어 통역 수요가 점점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심지어는 병원 진료 때도 통역이 필요하니까요. 게다가 기업이 농인 채용을 조금씩 늘리면서 아예 회사 전속 수어 통역사로 일하는 분들도 늘고 있어요. 앞으로 교원 자격증이 생겨나면 더욱 시장이 커질 거고요. 제대로 공부만 하고 자격증을 따면 80세까지도 일할 수 있는 '평생 직업'이죠. 요즘 인생이 '100세 시대'이지 않습니까."

    고인경씨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통역을 하다 보면 열심히 한다고 칭찬을 받아요. 근데 전 칭찬이 불편해요. 몸이 불편한 사람들을 위해서 고생한다는 의식이 은연 중에 깔려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생각해보면 한국에서 중국인을 위해 중국어 통역을 한다고 칭찬하는 사람이 누가 있나요.

    제가 하는 일은 봉사가 아니라 하나의 언어를 통역한다고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공용어로 인정받은 언어인 수어는 엄연히 하나의 똑같은 언어입니다. 이런 인식이 많이 퍼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는 동시에 저 자신도 수어 통역의 전문가로서 더욱 나아가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인생 목표인 'WFD 국제 수어통역사'를 꼭 실현할 겁니다. 두고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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