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회계사 공부 끝, 글로벌 톱 기업 나와 스타트업으로

  • 글 jobsN 최슬기 인턴

    입력 : 2016.12.01 10:10

    지옥 같던 신림동 고시생활
    포스코, 대기업 조직문화에 회의감 느껴
    P2P스타트업 '8퍼센트'로 가다

    김태경(36)씨는 회계사가 되기 위해 10년을 공부했다. 신림동 고시촌에 들어가선 빛이 보이지 않는 암흑 속에서 4년을 보냈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회사도 다녀봤다. 창문을 열면 바다가 보이고, 걸어가면 해수욕장이 닿는 곳이 집이었다.

    지금 그의 직장은 광화문에 위치한 크지 않은 사무실. 직원이 32명 밖에 되지 않는 생소한 P2P금융서비스회사다. 안락한 삶을 버리고,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 이유는 뭘까. 

    '8퍼센트' 김태경 재무총괄. | 잡아라잡

    ◇빛이 보이지 않던 신림동 고시생활

    김씨는 부산대 회계학과 99학번이다. 고등학교 때부터 회계사를 꿈꿨다. 하지만 합격은 쉽지 않았다. 2006년, 굳게 마음을 먹고 신림동 고시촌으로 들어갔다. 2010년, 친구들은 3, 4년차 직장인이 됐을 서른에 회계사가 됐다.
     
    -신림동 고시 생활은 어땠나요
    더 늦기 전에 제대로 공부하고 싶어 고시촌에 들어갔어요. 인간관계도 끊고 공부만 했어요. 원래 성격이 활발한 편인데 시간이 지나면서 자존감이 낮아지더라구요. 암흑으로 떨어지는 답답함이 이어졌죠.
     
    -힘들게 합격한 후에도 어려움이 많았다고요
    제가 합격한 2010년은 회계법인에서 유난히 수습회계사를 적게 뽑았어요. 9월에 합격자 발표가 났는데 저는 11월이 돼서야 작은 회계법인에 파트 타임으로 겨우 들어갔죠. 그래도 열심히 했더니, 몇 달 후엔 정직원 제의를 받았어요. 정직원이 되면서 결혼도 할 수 있었어요.

    신림동 고시촌에서 생활하던 26살 때 모습./ 김태경씨 제공
    -그 뒤에도 몇 번 더 회사를 옮기셨던데요
    한영회계법인을 거쳐서 하나금융투자 재무팀에 들어 갔어요. 금융업계에서 일해보고 싶었거든요. 회계사란 자격증이 있다 보니 비교적 이직이 쉬운 편이긴 하죠. 물론 이직을 결정할 때마다 쉽진 않아요. 함께 일하며 정든 사람들과 떨어지는게 힘들어서 많이 울기도 했어요.
    하나금융투자에서 일하던 당시 / 김태경 제공

    ◇ 딱딱한 조직문화, 회의감 느껴

    하나금융투자 재무팀에서 일한 기간은 2년, 2014년 4월 포스코로 이직했다.

    -증권사를 그만두고 포스코를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금융업에서 일하는 건 만족스러웠어요. 하지만 서울에서 사는 게 쉽지 않더라구요. 높은 물가, 비싼 집값, 양육비, 허리가 휘는 기분이었죠. 서울을 벗어나고 싶었어요. 글로벌 회사다 보니 해외에서 근무할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고요.

    -포항 생활은 어땠나요?
    제 고향은 경남 진주고, 아내는 밀양이에요. 고향과 가까운 포항으로 내려가니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죠. 집만 해도 18평에서 25평이 됐어요. 아파트 앞에 공원이 있고 조금만 걸으면 바닷가가 나왔구요. 삶의 질이 달라지니 아내와 아이들이 특히 좋아했어요.
     
    -그런데 왜 그만뒀죠?
    포스코는 ‘사람을 시스템에 딱 맞게 훈련시킨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직원만 1만 6000명이 넘는 대기업이다 보니 어쩔수 없는 측면이 있죠. 조직, 정확성, 안전, 이런 가치가 중요한 제조업이니까요. 회계법인이나 증권사에서 자유롭게 일하다가 대기업의 위계질서, 연공서열을 접하니 손발이 묶인 기분이었어요. 제 성격에는 맞지 않는다고 느꼈어요.

    포항에서 살던 당시 집에서 바라본 풍경(왼쪽), 집 앞 공원.(오른쪽) / 김태경씨 제공
    -언제 8퍼센트를 알게 됐나요?
    올 1월, 친구가 8퍼센트 채용공고를 알려줬어요. 친구들 만날 때마다 답답하다고 얘기했는데, 친구가 “너랑 잘 맞을 거 같다”며 연락을 해온거죠. 채용공고를 봤는데, 회계 베이스에 금융권 경험 등  ‘딱 나잖아!’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얼른 로켓에 올라타야겠다는 마음이 생겼죠.
     
    ‘8퍼센트’는 개인과 개인이 직접 거래하는 P2P(Peer to peer의 약자) 스타트업이다. 8퍼센트를 통해 다수의 소액투자자들이 대출이 필요한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고 대출자는 투자자에게 매달 갚는 방식이다. 2014년 12월, 첫 채권을 발행해 현재 누적투자건수 24만건, 누적 투자액 515억원을 웃돈다. 투자자 수익률은 평균 9.72%에 이른다.
    8퍼센트 입사 직후 사진 / 김태경 제공

    ◇ 서울-포항, 주말 부부로 지냈지만 일에 만족

    김씨는 8퍼센트에서 재무총괄을 맡고 있다. 보통 스타트업이나 다른 P2P 업체들은 회계법인을 따로 두지만 8퍼센트는 회계사를 직원으로 고용했다.

    -주변에서 반대하진 않았나요
    아내가 엄청 반대했죠. 가족 모두 포항 생활에 만족했으니까요. 제가 선택한 거니 일단 저 혼자 서울로 올라왔어요. 주중에는 여의도 고시원에서 자고 주말에는 포항으로 내려갔어요.

    -주말부부로 지냈네요
    금요일 저녁7시에 퇴근하면 바로 고속버스를 타고 포항으로 내려갔어요. 새벽1시쯤 집에 도착해서, 주말동안 아들 둘과 책보고 산책하며 시간을 보냈어요. 일요일 밤, 아이들이 잠드는 걸 확인하고 서울행 버스를 탔어요. 고시원에서 옷만 갈아입고 출근했죠. 전 새로 시작한 일에 만족하며 즐거웠지만 아이들이 힘들어했어요. 6개월 만에 주말부부 청산하고 경기도 고양에 집을 얻었어요.

    김태경씨와 아내(왼쪽) , 여의도고시원에서 지내던 모습(오른쪽)/김태경씨 제공

    ◇ "회사를 고를때는 회사 대표를 보세요"

    -8퍼센트에서 어떤 점이 만족스럽나요
    돈을 벌면서 사회에 기여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32명 직원 모두 이 생각을 하더라고요. 중금리라는 개념을 퍼뜨리고, 많은 사람이 적은 이자로 돈을 빌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에 뿌듯함을 느껴요. 또 내가 하는 일이 바로 효과가 나고 회사가 성장하는게 눈에 보여요. 큰 조직에서는 느낄 수 없는 일이죠.

    8퍼센트 직원들과 함께한 생일파티(왼쪽), 8퍼센트를 소개하는 김태경씨(오른쪽)/잡아라잡

    -이직을 고민하는 분들에게 할 조언이 있나요?

    스타트업으로 이직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회사의 ‘대표’입니다. 대표가 어떤 미래를 지향하는가를 잘 보고 판단하세요. 저는 대표님과 면접을 마치고 8퍼센트가 크게 성장할 거라 확신했어요.  대표님은 회사의 이익뿐 아니라 중금리거래를 통해 사회에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을까 고민하더라구요. 이곳에서 일하면 크게 성장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물론 막연한 환상으로 스타트업을 선택하는 것은 위험해요. 어떤일을 하는 곳인지 정확히 파악하세요.

    전 8퍼센트 입사 전, P2P금융서비스의 외국사례를 모두 찾아봤어요. 한국에서 얼마나 발전할지 따져봤고요. 발상도 신선했고, 앞으로 이 산업은 망하지 않고 커질거라 예상했죠. 자신의 이상과 현실을 조화롭게 실현할 수 있는 곳을 선택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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