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군인 취업난 “장교·간부 출신 자부심 버렸습니다”

인정받는 군인도 사회에선 평범한 취준생
전역 군인 10명 중 4명은 재취업 실패
35년 복무 군인, 자격증 6개 준비 후 전직 성공

이종철씨는 2009년부터 6년 간 육군 장교로 복무했다. 2015년 대위로 전역할 때까지 장성급 지휘관 표창장 10개를 받았다. 이 씨는 "인정받는 군인이라고 생각했고, 기업들이 경쟁적으로 뽑아 갈 것으로 기대했다"고 말했다. 

현실은 달랐다. 사학 전공, 토익 400점이 발목을 잡았다. 전역을 앞두고 50개 기업에 지원했지만, 모두 서류전형에서 탈락했다. 

군 장교도 '보잘 것 없는 취업 준비생'에 불과하다는 현실을 깨달았다. '나는 (군) 간부다'란 자만심을 버렸다. 경쟁상대들은 온갖 스펙과 직무역량, 경험으로 무장한 사람들이라고 되새겼다. 

자신만의 무기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한 화장품 회사 자기소개서에 넣을 내용을 만들기 위해 명동에 나갔다. 열흘 동안 하루 8시간씩 중국 여성들이 선호하는 화장품을 설문조사했다. 중국어를 몰라 손짓 발짓으로 설명해야했다. 절박했기에 가능했다.

이런 경험을 자기소개서에 녹였다. 1년 뒤 다시 30 군데 기업에 지원했고, 11곳에서 서류전형에 통과했다. 2016년 상반기 LG유플러스에 입사했다. 

◇ 35년 복무 군인, 자격증 6개 준비 후 전직 성공

정찬영씨는 2013년 2월 육군 준위로 전역하며, 35년 군 경력을 마감했다. 막막했다. '성실하면 어디서든 인정받을 수 있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착실히 준비했다. 퇴직 1년을 앞두고 자격증 6개를 땄다. 조경기능사, 빌딩경영관리사, 1급 소방안전관리자, 위험물관리자, 가스 사용·충전 시설 안전관리자, 보일러기능사 자격증이다.  
자격증 취득 후 워크넷, 육군취업지원센터, 취업사이트 등을 이용해 기업 20에 지원했다. 그러나 '자격미달', '경력 없음', '연령 초과'를 이유로 퇴짜 맞았다.

심지어 연금을 문제삼는 기업도 있었다. "연금 받는 사람은 믿는 데가 있어서 성실히 일하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 면접관이 있었어요." 30년 복무한 준위 연금은 280만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일이 너무 하고 싶었다. 전역 3개월 후 국군복지근무단이 운영하는 골프장 조경담당자로 취업했다. 하지만 적성에 맞지 않았다. 두 달 만에 몸무게가 4kg 줄었다. 다른 일을 해보기로 했다. 학교 시설을 관리하는 일이 눈에 들어왔다. 임대형민자사업(BTL)학교를 관리하는 회사 HDS였다. 임직원 대부분이 장기복무 경험이 있었다. 조경, 빌딩관리, 위험물 관리 등을 배운게 도움이 돼 합격했다. 현재 HDS에서 운영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 전역 군인 10명중 4명은 재취업 못해

전역 후 새 직장을 찾은 사람은 운이 무척 좋은 것이다. 상당수 전역 군인들이 취업 문턱에서 좌절하고 있다. '2016년 제대군인 취업지원 민·관·군 세미나' 자료를 보면 연간 제대 군인 수는 육군 기준 1만 9000명으로 나타났다. 이들의 최근 5년간 평균 취업률은 59.2%. 육군 관계자는 "40세쯤 전역하는 이들은 연금 수혜를 받을 수 없어 취업문제가 절실하지만, 마땅한 일자리를 못찾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2015년 기준 직업 군인은 28만명에 달한다. 부사관 19만명, 위관급 7만명, 영관급 2만명이다. 이들 상당수가 전역 후 재취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의무복무를 마친 후 젊은 나이에 전역하는 직업군인일수록 취업 실패 충격이 크다. 2014년 30세에 하사로 전역한 강 모씨는 "군인이 아니어도 얼마든지 다른 일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취업이 안돼 (전역한 것을) 후회하고 있다"고 했다. 

정부는 2015년 1월 국방전직교육원을 개설했다. 전역 예정자를 대상으로 기술 교육을 진행하는 기관이다. 자격증 취득에 필요한 교육과 컨설팅을 하고, 일자리 박람회와 취업·창업 설명회도 개최한다. 이곳에서 교육받고 전직에 성공한 군인은 지난 2년 간 7300명을 넘는다. 앞서 사례에 나온 이종철, 정찬영씨도 국방전직교육원에서 컨설팅을 받았다. 

아직 전직 성공률이 높지 않은 문제가 있다. 이순희 국방전직교육원 홍보팀장은 "군 경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자격증을 만들고, 다른 취업 교육 프로그램도 강화할 계획이다. 전역 장병들이 취업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