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일러가 놀란 한국 이력서, 청년이 스스로 법안 발의해야 하는 한국 현실

  • 글 jobsN 감혜림

    입력 : 2016.11.28 10:28

    청년 3명, 부산지역 공공기관 입사지원서 조사 
    신체·가족 묻는 문제적 이력서  
    조례나 법률 제정까지 요구할 계획 

    "키와 몸무게를 써라." 
    "가족의 학력, 직장, 직위를 써라." 

    2016년 상하반기 모집한 한 기업의 입사지원서 항목입니다. 업무와 상관없는 신체·가족 정보를 묻고 있습니다. jobsN은 상하반기에 걸쳐 이 문제를 지적했습니다.

    지난 9월 정의당 청년위원회 소속 3명이 '문제적 이력서'에 반기를 들었습니다. 부산 지역 공공기관 49곳의 입사지원서를 분석했습니다. 출생지나 가족 관계 등 업무 능력과 관련없는 항목을 요구한 기관을 발표했습니다. 이후 부산시는 산하 공공기관에 업무 관련성이 적은 항목을 삭제한 표준이력서 사용을 권고했습니다. 

    이런 변화에 고무돼 청년들은 기업이 반드시 표준이력서를 쓰도록 하는 법안을 제안했습니다. 청년 중 한 명인 이영봉(21·대학생)씨를 인터뷰했습니다. 

    부산 지역 공공기관 입사지원서를 분석해 표준이력서 사용을 제안한 청년들. 왼쪽부터 김경일, 이강일, 이영봉씨 /본인제공

    ◇ 매년 지적되는 문제…청년들이 나서야 

    지난해 12월 부산에 사는 이영봉·김경일(25·대학생)·이강일(30·회사원)씨는 '공공기관 이력서 분석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49개 공공기관의 자체 이력서를 내려받아 업무와 관련 없는 문항을 추렸습니다. 사진을 붙이도록 한 기관은 48곳, 키·몸무게·질병 등 신체정보를 요구한 기관도 9곳이나 됐습니다. 부동산이나 세대원 소득을 물어본 기관도 한 곳 있었습니다. 

    -왜 이력서 문제를 다루게 된거죠? 
    주변에 입사지원서 쓰면서 고민하는 선배들을 많이 봤습니다. "대체 이걸 왜 써야 되냐"고 하면서도 불이익을 받을까봐 꾸역 꾸역 채워넣더군요. 고용노동부가 2007년 표준이력서를 내놨어요. 매년 채용시즌만 되면 '이력서 항목이 문제 있다'라고 하지만 변하는 게 없어서 답답했습니다. 왜 안 바뀔까 고민하다보니 차라리 직접 나서서 해보기로 했습니다. 

    -취업을 앞두고 있는데 불이익이 걱정되진 않던가요?
    물론 취업하는데 좋지는 않을 거예요. 하지만 일단 저와 제 친구들이 맞닥뜨릴 문제이고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많은 만큼 적극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조사한 이유는 뭔가요? 
    채용 관련 이슈가 나오면 항상 나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민간기업까지 강제로 바꾸라고 하기 어렵다'는 건데요, 사회 전체가 당장 바뀔 수 없다면 우선 공공기관이라도 살펴보기로 했습니다. 정부에서 만든 표준이력서이니 공공기관에서만큼은 지켜야 하지 않나 생각했습니다.  

    -조사는 언제부터 했나요? 
    지난해 연말에 기획해서 올해 1월부터 시작했습니다. 기관 홈페이지에 올려놓은 이력서를 일일이 찾았습니다. 50곳이 넘는 부산지역 공공기관 중에서 자체 입사지원서 양식을 갖춘 곳 49군데를 골랐습니다. 이력서를 출력해서 비교하는 작업을 하니 3월에야 마무리 됐습니다.

    ◇ 너무 익숙해 문제라 생각 못하기도 

    이들은 고용노동부가 만든 표준이력서, 서울시가 세대별 노동조합 '청년유니온'과 함께 만든 표준이력서 등을 참고했습니다. 

    -조사해보니 어떤 점이 놀랍던가요?  
    가족관계나 출생지, 키·몸무게 같은 정보를 여전히 물어본다는 게 놀라웠습니다. 10여년 전부터 계속 문제가 됐던 항목인데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아울러 저희는 병역 관련 항목도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복무기관이나 면제 정도는 기입할 수 있지만, 병과(주특기)나 군번까지 적으라는 곳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한국 현실상 병역은 기본 정보에 해당하지 않나요? 
    고용노동부 표준이력서에도 병역을 마쳤는지 면제 받았는지 정도만 표시하게 돼 있습니다. 군대에서 맡았던 업무(주특기)나 최종 계급은 업무와 관련없는 항목입니다. 조기 제대 이유가 질병이나 집안사정이라면 내밀한 개인정보인데 너무 쉽게 묻고 있었습니다. 평소 그런 질문에 익숙해져 있어서 대부분 문제가 된다고 생각조차 못하는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대학생들이 표준이력서 법제화를 제안한 시민입법 플랫폼 '국회톡톡'. 누구나 자유롭게 이곳에 법안을 제안할 수 있다. 1000명이 동의버튼을 누르면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 의원들에게 메일이 간다. 해당 메일을 받은 국회의원은 국회톡톡 플랫폼에 직접 댓글을 남기고, 시민들이 제안한 내용을 입법활동에 참고한다. /국회톡톡 캡쳐. 이미지를 클릭하면 국회톡톡으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 표준이력서 법제화를 위한 첫걸음 

    이영봉씨는 올해 9월 시민입법 플랫폼인 '국회톡톡' 사이트에 '표준이력서를 법제화하자'는 제안을 했습니다. 국회톡톡은 누구나 법안을 만들어 제안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해당 제안에 시민 1000명이 공감하면 관련있는 상임위원회 국회의원들에게 메일을 보냅니다. 국회의원들이 국회톡톡사이트에 직접 댓글을 달거나 법안에 참고할 수 있습니다. 

    이씨의 제안에 공감한 사람은 아직 600명입니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 권미혁 의원이 응원하는 댓글을 남겼습니다. "이력서 사진을 찍으려 10만원이나 들었다" "이력서에 차별성 없는 내용을 넣다보니 면접도 부실해진다" 등 공감하는 시민들이 남긴 댓글도 70여개나 됩니다.

    이영봉씨의 제안에 권미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남긴 댓글 /국회톡톡

    해외이력서를 본 이씨는 "많이 놀랐다"고 했습니다. "미국 등 다른 나라 이력서를 보면 주로 어떤 활동이나 공부를 했는지를 중심으로 씁니다. 면접도 심층적일 수 밖에 없고요."

    실제로 최근 미국 유학생 타일러 라쉬(서울대 정치학과 대학원)는 "인턴에 지원하다가 사진을 붙이라고 해 충격받았다"며 "미국에서는 사진을 붙이거나 성별·나이·인종 등이 드러나는 질문을 하면 고소할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JTBC '비정상회담')

    이씨의 앞으로 계획은 무엇일까요? "표준이력서를 반드시 사용하도록 하자는 내용의 법안은 예전에도 몇 번이나 발의가 됐습니다. 하지만 다른 법안에 밀려 제대로 처리가 안됐습니다. 사회 분위기도 바뀔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문제 제기를 할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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