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만들어 드릴까요” 3대째 가업 잇는 ‘동명대장간’
1937년부터 3대가 이어온 대장간
대장장이 하기 싫어 3번 도망간 아버지
건설회사 그만둔 아들이 100년 역사 잇는다
백화점과 고층 빌딩이 줄지어 있는 서울 천호동 로데오거리. 5분쯤 떨어진 뒷골목에 20평 정도 되는 대장간이 있다. 79년 역사를 자랑하는 동명대장간. 가게에 들어서니 수백개 공구와 철물이 있다.
손님이 끊이질 않는다. 하루 100~150명이 방문한다. 미리 만들어 놓은 제품을 사가는 사람이 많다. 주문 제작도 한다. 발주를 넣으면 짧게는 몇 시간, 길어도 다음날 찾아갈 수 있다.
강영기(65) 사장과 아들 강단호(37)씨. 새벽 6시 30분부터 밤 9시까지 이곳을 지킨다. 말이 없지만 호흡은 척척이다. 섭씨 2000도가 넘는 화로에 긴 쇳덩이를 넣어 빨갛게 달구고, 철판 위에 놓고 돌린다. 철이 둥글게 휘면서 금세 고리가 달린 말뚝이 된다.
이제 몇 남지 않은 동네 대장간. 큰 기계를 만들거나 도매 전문 대장간은 있지만, 동명처럼 화덕을 이용해 각종 잡동사니를 만드는 곳은 드물다. 최근 서울시 ‘미래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 시대마다 만드는 물건·방법 달라져
강영기 사장의 선친이 1937년 철원에서 시작했다. 1950년 6.25전쟁 직전 서울 천호동으로 이사 왔다. 긴 세월 많은 변화 속에서도 꾸준히 자리를 지켰다. 50년 전 가게 뒤엔 공동묘지가 있었고, 앞 비포장도로는 질척거려 장화를 신고 다녔다. 떠나지 않았더니 핵심상권이 됐다.
-어떤 사람들이 찾아오나요?
아버지) 70~80년대는 농기구 찾는 사람이 많았는데, 90년대 넘어가며 건축자재 찾는 사람이 많아요. 물건 가짓수가 계속 늘고 있죠. 등산용품 수리하러 오는 사람이나 인테리어 용품 만들어 달라는 분도 계세요. 다양한 제품을 만들 수 있다는 것. 소매의 매력입니다.
-찾는 이유가 뭘까요?
아들) 철제를 그냥 깎아 만든 제품이 많아요. 저희는 녹이고 두들겨 만듭니다. 튼튼하죠. 기성품보다 단가는 비싸지만 품질이 좋으니 계속 찾는 것 같아요.
-두 분이 하기에 버겁지 않나요?
아버지) 예전엔 풀무질, 매질, 담금질 등을 모두 직접 해야 했어요. 매질 할 땐 네 명이 망치를 들고 번갈아 때렸죠. 5명이 필요했어요. 지금은 기계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요. 2명도 괜찮아요.
-값싼 물건만 찾는 사람이 많은데
아버지) 중국산 기성품이 들어오면서 한창 잘나갈 때와 비교하면 손님이 20~30% 정도 줄었어요. 그래도 긍정적으로 생각해요. 덕분에 우리 물건 품질이 돋보이잖아요.
◇ 대장장이 하기 싫어 3차례 도망, 그리고 부끄러웠던 아버지
아들 강단호 씨는 대장장이가 싫었다. 아버지가 부끄러운 적도 있다. 아버지 강영기 사장도 어릴 때 마찬가지였다. 지금은 다르다. 강영기 사장은 최고의 대장장이가 됐고, 아들은 그런 아버지를 닮고 싶다.
-각자 언제 일 시작하셨나요?
아버지) 선친에 이끌려 중학생 때부터요. 공부보다 대장간 일이 익숙했죠. 하기 싫어 3번이나 도망쳤어요. 목수 일 해보고 리어카 바퀴 만드는 일도 했어요. 다른 일 해보니 소중함을 알겠더라고요. 결국 대장간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들) 건축학과 졸업하고 1년 넘게 건설회사 다녔어요. 2005년 아버지 건강이 안좋아지면서 대장장이를 이어 받기로 결심했습니다.
-아들이 대장장이가 되겠다고 할 때 어땠나요?
아버지) 반대했어요. 좀 더 대우받는 직업 갖길 원했거든요. 그런데 아들이 무작정 대장간으로 출근하더라고요.
-일이 어렵지 않나요?
아들) 10년을 배웠는데 못하는 게 많아요. 열처리 작업이 가장 힘들죠. 화로의 온도나 달구는 시간이 맞지 않으면 원하는 모양이 나오지 않아요. 물에 식힐 때도 몇 초를 담그냐에 따라 쇠의 강도가 달라져요. 50년 넘게 일한 아버지는 감으로 하시지만 저는 어려워요.
-후회하진 않나요?
아들) 아니요. 한 번도 후회해본 적 없어요. 만약 제 아들이 나중에 대장장이가 된다고 하면 오히려 뿌듯할 것 같아요.
-앞으로 목표는요?
아들) 동명대장간의 역사를 100년 넘게 늘리는 거요. 옛날에는 대장장이가 천한 직업이었을지 몰라도, 점차 장인으로 인정받고 있어요. 자부심을 갖고 일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