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연금만 900만원 고졸 20대 보유한 기술은?

2005년 국제 기능 올림픽 은메달리스트
전국기능대회·민간기능대회 심사위원
자동화장비설계 회사 제이디오 대표 김종희씨

아직 20대. 지금까지 받은 연금은 약 1억원이다. 한달 80만원이었던 월급은 10배 이상으로 늘었다. 창업에 성공해 직원에게 대기업 수준의 월급을 준다. 김종희(29) 제이디오 대표.

성공의 원천은 기술이다. 2005년, 19살 나이로 핀란드 헬싱키 국제기능올림픽 기계설계·CAD 종목에서 은메달을 받았다. 상금으로 1200만 원을 받고, 매년 900만원의 국가연금을 수령하고 있다. 우리나라 남성 예상수명이 78세인 것을 감안하면 50년간 4억5000만원의 연금이 보장돼 있다.

김 대표는 고등학교 졸업 후 한 기계설계 회사를 다녔다. 2014년 자동화장비 설계회사 제이지오를 설립했다. 창업 2년 만에 안착했다. 직원들에게 삼성 못지않은 연봉을 준다. 올해 스타기술인 홍보대사에 선정됐다. 기술로 나라에 기여한 사람에게 고용노동부가 주는 직함이다.

◇ 3년간 기능생에서 국제기능올림픽 수상까지

-기계설계는 어떻게 시작했나요?
중학교 때까지 명확한 목표 없이 무기력하기 지냈어요. 경북기계공고에 들어가 제 적성을 알게 됐습니다. 특히 도면 그리는 기초제도 시간이 재미있었어요. 지도 선생님의 권유로 대회 입상을 목표로 하는 기능생에 뽑혀, 1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훈련했습니다.

-기능생 생활은 어땠나요.
일반 학생과 많이 다릅니다. 각종 기능대회 입상을 목표로 훈련하기 때문에, 아침부터 밤 10시까지 하루 종일 기술 교육만 받았어요. 수업은 거의 빠졌고, 방학도 없었습니다. 대구에 있는 친척 집에 살면서, 고향에 있는 부모님을 거의 못뵀어요.

-힘든 생활을 버티게 한 힘은요?
일단 재미있었어요. 특출나게 잘한다고 생각하지 못했는데, 훈련을 거듭하면서 실력이 느는 게 좋았어요. 무엇보다 꼭 상을 타고 싶었습니다.

-부담이 컸겠어요.
경북기계공고가 기능대회 수상 실적으로 유명했어요. 상을 꼭 타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죠. 그래도 이왕 시작한 것, 가장 높은 무대인 국제기능올림픽까지 가고 싶었습니다.

김씨는 고3이던 2004년 지방기능경기대회, 전국기능경기대회에서 1등을 차지하며 다음해 기능올림픽 출전권을 땄다. 2005년 국가대표를 후원하는 회사에 취업해 기술을 다듬어 올림픽에 출전했다. 성적은 은메달. 세계 2위다.

-큰 성과를 이루셨네요.
아뇨. 충격이었습니다. 당연히 금메달 받을 줄 알았거든요. 기계설계는 우리나라가 1997년부터 계속 금메달을 땄던 종목이에요. 그때 이후 처음으로 은메달을 딴거죠. 충격으로 코피까지 쏟았어요. 대회 끝나고 한동안 허무했습니다. 그래도 계속 절망하고 있을 순 없었어요. 은메달의 충격으로 오기가 생겼어요. 기술을 더 단련해야 겠다는 욕심이 들었죠.

◇ 경험을 바탕으로 제이디오 설립

국제기능올림픽이 끝나고 9년 간 직장 생활을 했다. 대회 출전을 후원했던 첫 직장에서 7년 일하고, 두 번째 직장에서 총괄 실장으로 2년 일했다. 이후 회사를 나와 2014년 2월 설계회사 '제이디오'를 설립했다.

-직장 생활을 그만둔 이유는요?
한 분야 설계만 10년 가까이 하면서 회의감이 들었습니다. 다양한 설계를 해보고 싶었거든요. 부담 문제도 있었습니다. 기능올림픽 은메달리스트라 남들보다 기대치가 높았습니다. 좀더 자유롭게 일하고 싶어졌어요.

-바로 창업했나요?
퇴사하고 한 달 정도 프리랜서로 일했습니다. 수입이 나쁘지 않았어요. 그런데 일하는 수준에 한계가 있었습니다. '지금 아니면 못할 것 같다'는 생각에 창업에 도전했습니다.

김종희 대표 본인 이름의 이니셜 J와 디자인의 D를 따서 '제이디오'라 이름지었다. 컴퓨터를 활용해 기계설계, 제품설계, 종합제작, 특수제작, 모션애니매이션 제작 등을 한다. 자동화 장비 설계가 주 영역이다.

-초창기 난관은 뭐였나요.
설계(도면) 창업은 초기투자금이 적어도 도전할 수 있어요. 주로 컴퓨터를 활용하기 때문에 자본금이 많이 들지 않죠. 하지만 일 들어오는 건 다른 문제에요. 신생 업체라 큰 일 맡기가 어려웠습니다. 인력도 부족하고 전체적으로 안정적이지 못했어요.

-어떻게 돌파했나요.
기술과 사람이요. 초고진공(진공도가 매우 높은 상태) 시스템 같은 특수 장비 설계 기술을 적극 어필했어요. 직원은 국내 및 국제 기능대회 출신으로 엄선했구요.

-도움 준 사람이 있었나요?
처음 다녔던 회사의 사장님께서 많이 도와 주셨어요. 그 분도 국제기능올림픽 출신이세요. 29살에 창업해 건실하게 회사 이끄는 모습을 보고 '나도 저렇게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신 분이죠. 사업 시작할 때 많은 조언을 받았고, 지금도 그 회사 일을 위탁받아 하고 있어요.

현재 제이디오는 포스코, 현대 등 대기업의 1차 협력사로 도약했다. 김 대표는 "반응이 좋아 고객이 계속 늘고 있다"고 했다. 회사가 성장 단계에 있어 직원은 아직 3명 뿐이다. 그러나 대기업 못지않은 연봉과 성과급을 주고 있다.

-조금 덜 주고 많이 채용하는 게 낫지 않나요?
아직 회사가 크지 않아요. 내실을 다지면서 성장해야 합니다. 회사가 작을수록 급여를 많이 줘야 일을 열심히 해 초기 기틀을 닦을 수 있어요. 회사가 좀더 탄탄해지면 경력직 위주로 채용을 늘릴 생각입니다.

◇ 후배기술인 더 양성하고 싶어

김씨는 2014년, 2015년 연속으로 전국 기능경기대회 심사위원을 맡았다. 인천 글로벌숙련기술진흥원에서 한 달에 한 번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기술 전수도 한다.

-기능대회 출신이라 감회가 남다르시겠어요.
후배를 발굴하고 봉사한다는 생각으로 임합니다. 선수 시절을 떠올리며 최대한 공정하게 심사하려고 노력해요. 전국기능경기대회는 국제기능올림픽 출전과 직결돼 민감합니다. 학생 입장을 최대한 고려해 심사하고 있습니다.

-기술 전수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요?
앞으로 많은 직업이 사라진다고 하는데, 기술인은 100년이 지나도 그 가치를 잃지 않을 겁니다. 기술인이 많아지면 좋겠어요. 어린 학생들에게 그 가치를 알려 주고 싶습니다. 나이가 들면 보다 전문적인 기술 교육을 할 계획이에요.

-한 길만 고집할 수 있는 원동력이 뭔가요.
어릴 때 적성을 발견해 꾸준히 도전해 왔어요. 재미를 찾은 덕분에 포기하지 않았죠. 학생을 가르칠 때마다 '너의 적성을 찾으라'고 이야기합니다. 확신만 있다면, 한 길로 가는 게 좋습니다.

-창업을 준비하는 청춘에게 조언을 해주신다면요.
처음 창업할 때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전 좋은 방향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했어요. 도전의식이 있는 고등학생과 대학생이 많이 나오면 좋겠습니다. 당장 실패해도 괜찮아요. 긍정적인 사고로 또 도전하면 됩니다.

-앞으로 목표는요?
사업을 계속 키워야죠. 엔지니어링(설계)만으론 한계가 있어서, 제품 개발도 할 계획입니다. 100년 넘게 살아 있는 회사를 만들고 싶어요.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서면 개인 시간을 가질 계획입니다. 국제기능올림픽 이후로 제대로 쉰 적이 별로 없어요. 재정비해서 후배 양성에 열중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