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 막을 뻔한 김영란법, 교육부가 대책 내놔도 혼란 여전

교수 재량 발휘하기 어려워
'학칙개정 가능' 공문 발송했으나 혼란 여전

'김모 씨는 지난 마지막 학기 중 취업에 성공했습니다. 출근하면 남은 수업을 들을 수 없어 담당 교수인 이씨에게 "F학점은 면해달라"고 요청했죠. '취업 증명서'도 제출했습니다. 이씨는 출석을 인정하고 D학점을 줬고, 김 씨는 졸업 후 회사를 잘 다니고 있습니다.'

이 같은 사례는 최근 발효된 김영란법 위반입니다. 학생이 교수에게 '부정청탁'을 했기 때문입니다. 이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졸업 예정자 사이에선 불만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9월 26일 교육부가 대책을 내놨지만 혼란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당황스러운 졸업예정자들
 
대학가에선 조기취업자의 출석·학점을 인정하는 관행이 있어 왔습니다. 학생의 처지를 감안할 필요가 있는데다, 취업률이 대학평가의 중요한 지표 중 하나이기 때문이죠.

그런데 김영란법에 따르면 청탁을 들어준 교수는 최고 2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습니다. 학생은 처벌 받지 않죠.

이런 상황이 엄격히 적용되면 교수들은 남은 수업에 나오지 않은 조기 취업생에게 F학점을 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면 졸업을 하지 못해 입사가 취소될 수 있습니다.

면접 확인증을 발급받아 출석처리를 해주는 행위도 불법입니다. 성적 장학금 등을 이유로 성적을 올려달라는 요청, 다음 학기에 재수강을 하기 위해 학점을 내려달라는 요구도 마찬가지입니다.

서강대 4학년에 재학 중인 김모(24)씨는 “비리 공직자를 없애기 위해 도입한 법에 왜 우리가 피해봐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언제는 취업하라면서 이제는 방해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고려대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하는 유모(27)씨도 "안 그래도 취업이 어려운데 당황스럽다.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한 것 같다"고 푸념했습니다.

◇부당한 성적 정정 요구 조기 차단

긍정적인 효과도 있습니다. 교수의 재량권은 언제든 ‘불공평’을 낳을 소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교수 마음에 들면 출석 인정 등을 해주고, 그렇지 않으면 안해주는 일이 차단될 수 있는 겁니다. 때때로 벌어지는 부당한 성적 정정 요구 같은 일도 막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환영하는 교수도 많습니다. '한 번만 봐달라'는 읍소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는 겁니다. 서울 소재 한 사립대 교수는 "학기 내내 '출석을 인정해달라'는 요청이 끊임 없었다. 그런데 학생들이 가져오는 면접 확인증·취업 증명서 중에 간혹 가짜도 있었다. 앞으로 이런 일이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대책 내놓았지만 글쎄···

교육부는 지난달 26일 각 대학에 "자율적으로 학칙을 개정해 취업한 학생에게 학점을 부여할 수 있다"는 내용의 공문을 발송했습니다.

그런데 세부 지침이 없습니다. 서울 소재 한 사립대 관계자는 "교육부에서 공문을 보냈으니 추진할 생각이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못잡겠다"고 했습니다.

부당한 요구를 차단하면서 취준생의 고충을 해소하려면 명확한 규정이 빨리 나와야 하는데 정부와 대학의 대응이 기민하지 못한 겁니다.

김영란법 시행 첫날인 지난달 28일 '대학생이 교수에게 캔커피를 줬다'는 신고가 접수됐습니다. 명확한 지침이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이 소식이 알려지자 학생들의 혼란이 커지고 있습니다.

동덕여대에 다니는 최모(22)씨는 "그날 뉴스를 보고 법을 처음 알았다. 법에 저촉되는 다른 사항은 없는지 알아봐야할 것 같다"고 했습니다. 정부와 대학이 후속조치를 서둘러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