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직원 무료로 해외여행 보내주는 여행사

가족 동반 1인 여행비 전액 지원
직원이 만드는 57개 파격적인 복리후생
영업이익 대부분 직원들에게

“안녕하세요. 가수 박상철입니다.”

지난 9월 3일 일본 나가사키에 위치한 하우스텐보스 ‘윈즈사세보’ 대극장. 은색 자켓에 반질거리는 검정색 바지를 입은 가수 박상철씨가 무대 위에 올랐다. 대표곡 ‘무조건’을 열창하자 객석에 있는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크게 따라 부른다. 뒤이어 가수 토니안과 이한, 걸그룹 어썸베이비도 등장했다. 유명 가수들의 합동 콘서트일까. 아니다. 여행사 '여행박사'의 해외 워크숍 연회 현장이다.

◇워크숍이 아닌 '자유 여행'

서울 용산구에 본사를 두고 있는 여행박사는 2000년 8월 문을 열었다. 신창연 창업주를 비롯한 네 사람이 250만원으로 회사를 세웠다. 국내 최초로 자유배낭여행을 상품화했고, 밤에 출발하는 올빼미여행도 처음 만들었다. 참신하고 저렴한 여행 상품으로 창업 7년 만에 연매출 150억원을 넘겼다. 2015년 매출액은 266억원. 업계 4위 규모다. 부산?대구에 지사, 포항?전주에 지점이 있다.

여행박사 직원들은 2002년부터 매년 영업이익이 나는 해에 가족 동반 여행을 가고 있다. 회사는 직원 외에 가족 1명까지 항공?숙박?식대 등 여행비를 제공한다. 2002년 이후 영업이익이 발생한 해는 총 10년. 일본?태국?중국?대만 등 10번의 직원 여행을 진행했다.

올해에는 849명이 일본 큐슈로 2박3일을 다녀왔다. 전직원 340명에 가족을 합한 숫자다. 고객이 불편을 겪지 않도록 각각 금요일과 토요일에 출발하는 선발대와 후발대로 나눴다. 1인당 60만원을 지원하는 꼴. 인원이 많아 비용을 크게 낮출 수 있었다.

패키지여행과 자유여행으로 나눠 선택하도록 했다. 자유여행은 회사에서 항공과 숙박만 정하고 여행 일정은 각자 짜는 것이다. 패키지여행은 상품 10여개 중 고르게 했다. 이를 통해 직원들은 유후인·아소산·쿠로가와 온천마을 등 큐슈의 유명 관광지를 둘러봤다.

자유여행을 선택한 직원이 많아 다양한 여행 루트가 나왔다. 가족과 여행하며 스스로 여행박사 고객이 돼 보고, 좋은 상품을 발굴하는 기회가 됐다.

서울 본사에 일하는 노현주(25) 대리는 2011년 입사한 이래 이번이 4번째 워크숍이다. “차를 빌려서 부모님, 남자친구와 함께 자유롭게 여행했어요. 다른 친구들은 회사 워크숍만 생각하면 괴로워하는데 저희 직원들은 매년 기다립니다.”

노 대리의 어머니 김남숙(53)씨는 “딸을 잘뒀다”며 말문을 열었다. “딸 덕분에 1년에 1~2번은 꼭 여행합니다. 3년 전 하우스텐보스를 들렀을 때는 봄이라 튤립이 만발했는데, 지금은 가을이라 느낌이 또 다르네요. 딸이 회사에 정말 잘 들어간 것 같아요.”

명색이 워크숍인 만큼 공식 행사는 있다. 가족끼리 여행을 즐기다 토요일 밤 열리는 연회에 참석하면 된다. 절반 정도 참석한다.

연회는 직원들의 장기자랑 위주로 진행되는데, 올해에는 5팀이 경연을 벌였다. 한달 전부터 연습실을 빌려가며 준비할 만큼 열성적이었다. 1등에게 500만원이라는 큰 상금이 걸렸기 때문.

1등은 부산 지사 ‘여박 걸크러쉬’에게 돌아갔다. 여자 사원 4명이 씨스타의 ‘러빙유(loving you)’와 팝 ‘뱅뱅(bang bang)’에 맞춰 춤을 선보였다. 여박 걸크러쉬 멤버인 임효숙(25)사원은 “퇴근 후 회사 빈 사무실에서 컵라면을 먹어가며 연습했다. 좋은 결과가 나와서 기쁘다. 부산지사에 피자와 치킨을 쏠 예정”이라고 말했다.

◇직원들이 직접 만드는 복지제도

여행박사는 해외 워크숍뿐 아니라 각종 복지제도로 유명하다. 총 57개 제도를 운영 중이다.

1인당 120만원의 복지 카드는 용도 제한 없이 사용할 수 있다. 출퇴근 하는데 왕복 3시간이 넘게 걸리는 직원에게 무료로 사택을 제공한다. 서울에 5채, 부산에 2채가 있다. 직원들은 공과금만 내면 된다. 2012년 대통령 선거에서 직원 투표율 100% 달성을 기념으로 직원 모두에게 각각 50만원을 지급한 적도 있다.

건강 관련 복지 제도를 강조하고 있다. 골프?마라톤?풋살 등을 하는 직원에게 한 번 나갈 때마다 1인당 3만원씩 지원한다. 또 특정 기록을 깨면 파격적인 포상금을 준다. ‘골프 시작 1년 내 남자는 100타·여자는120타 달성 시 1000만원 지급’, ‘마라톤 기록 1분 단축 시 100만원 지급’ 등이 대표적이다. 1000만원을 탄 직원은 4명, 마라톤 기록을 단축해 6번 연속 100만원을 탄 직원도 있다.

복지제도는 매년 진화하고 있다. 직원들이 잘 이용하지 않는 건 없애고 필요한 건 새로 만든다. 이를 위해 연초 복지제도를 수정할 프로젝트(TF)팀을 운영한다. 또 인트라넷에 익명으로 들어온 직원들의 의견을 수렴한다.

성형수술?라식?라섹 수술비 지원이 대표적이다. 여행박사 직원의 85%는 20대~30대다. 사내 결혼지원?자녀양육 지원?병원비 지원 등 좋은 복지제도가 있지만 미혼자는 잘 활용하지 못했다. 이런 점을 고려해 2014년 성형수술?라식?라섹 수술비 지원 제도를 도입했다. 100만원 한도 내에서 수술비의 50%를 지원한다.

한 달에 한 번 3시간 일찍 퇴근하는 제도도 직원 요청으로 도입됐다. '라운지데이'라고 부르는 조기 퇴근 제도다. 원래 퇴근 시간은 오후 6시지만, '라운지데이'라고 적힌 알림판을 책상에 올려 두고 오후 3시 회사를 나설 수 있다. 은행 일을 보거나 연인과 데이트를 할 수 있어 직원 사이에서 반응이 좋다. 또 연차사용률은 85%. 국내 전체 평균보다 20% 포인트 이상 높다.

마케팅부 서신혜 대리는 “전혀 눈치 보지 않고 복지제도를 누린다. 애사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직원이 희망이다

복지제도가 가능한 이유는 “직원들이 즐겁게 일해야 고객도 즐겁다”는 황주영 대표와 신창연 창업주의 신념 덕분이다. 이들은 직원에게 '즐겁게 일하라' 강요하지 않는다. 반바지에 차림에 운동화를 신고 회사를 돌아다니며 몸소 '즐겁게 일하기'를 실천한다.

원래 대표는 신창연 창업주였다. 그가 대표직에서 물러난 일화가 독특하다. 여행박사는 팀장급 이상 임원을 매년 전직원 투표로 뽑는데, 누구나 공약을 내걸며 출마할 수 있다. 재신임을 받기 위해 2년 차에 60%, 3년 차부터는 70% 이상의 지지를 얻어야 한다. 2013년 10월, 신 창업주는 대표이사직 투표에서 '지지율 80%이상 시 재신임'이라 공약했다가 79.2%로 물러났다. 자신이 만든 제도 때문에 대표자리를 박탈(?)당한 것. 대신 창업 멤버이자 부산지사장이었던 황주영 대표가 추대됐다.

회사 운영에 필요한 비용은 연간 10억원 정도. 영업이익에서 이를 제외한 나머지는 직원에게 성과급과 복리후생 개편으로 돌려준다. 예를 들어 2012년 영업이익 40억원 중 28억원을 직원을 위해 썼다. 왜 이렇게까지 하냐는 질문에 황 대표는 이렇게 말한다.

"여행업은 부침이 심합니다. 저희 회사의 성장동력이었던 자유배낭여행은 이제 다른 곳도 많이 하죠. 여러모로 힘든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저희에게는 '직원'이라는 희망이 있습니다. 회사는 직원이 만드는 겁니다. 역량을 제대로 발휘하려면 회사에서 일하는 게 즐거워야 합니다. 직원들이 정말 행복해지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