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준비생들이 직접 만드는 '취업콘서트'

홍보에만 열 올리는 기업주최 채용 박람회
스터디에서 만난 취준생들이 직접 기획
회사생활 고충까지 허심탄회하게 전달

국내 주요 대기업들이 2016년 하반기 공개채용에 돌입했다. 취업준비생들은 정보를 하나라도 더 얻기 위해 취업 설명회를 찾아 다닌다. 그런데 실망하는 경우가 많다. 입사 선배들로부터 생생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으리라 기대하지만, 인재상과 채용 방식만 나열하는 겉핥기에 그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보여주기식 취업설명회에 질린 취준생들이 직접 나섰다. 지난 8월 27일 서울 종각 스터디 카페 '더빅스터디'에서 ‘청춘 토크 콘서트'가 열렸다. 취준생 15명이 3개월 동안 준비한 이색 설명회였다. 5월부터 '더빅스터디' 카페에서 만나 하반기 공채를 준비하던 친구 사이로, 기획서 작성부터 연사 섭외까지 모두 함께 했다.

◇기획서 작성부터 강연자 섭외까지

이색 설명회 무대가 된 '더빅스터디'는 취업 컨설팅 회사이자 스터디 카페다.  3개월 단위로 회원을 모집해 컨설팅을 진행하면서(1주일 1회 3시간), 공부 장소도 제공한다. 비용은 시간당 1300원. 정주헌 대표가 ‘좋은 직장을 만들겠다’는 신념으로 2013년 창업했다.

'청춘 토크 콘서트'를 연 15명의 취준생은 더빅스터디가 지난 5월 모집한 200명 중 일부다. 정 대표가 회원들에게 “취업준비생들이 진정 원하는 설명회를 만들자”고 제안했고, 마케팅 직무에 관심있는 회원들이 나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예산 240만원 중 110만원은 스토리펀딩으로, 나머지는 더빅스터디와 후원 기업들이 충당했다.

더빅스터디 직원들은 조언만 해줄 뿐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 15명의 취준생들이 오롯이 맡아 진행했다. 그래서 시행착오가 많았다. 유명 강연자를 섭외하고 싶었지만 쉽지 않아, 기획서를 3차례나 다시 만들었다.

결국 성공하진 못했다. 10일 남짓 열심히 홍보했지만, 100명도 채 참가하지 않았다. 목표로 했던 500명에 크게 모자란다. 그러나 정 대표와 기획에 참여한 취준생들은 크게 실망하지 않는다. "아쉬움이 남을지언정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알짜 정보를 얻어간 학생이 한 명만 있어도 성공했다고 생각해요."

취업준비에 방해를 받지는 않았을까. 단국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한 김선정(24)씨는 "동아리 등 대외활동을 많이 했지만 간접 체험이라 마케팅 직무를 이해하기 어려웠다"며 "취업을 준비하며 정보가 없어 답답했는데 행사를 준비하면서 스스로 갈증을 해소한 것 같다"고 말했다.

숙명여대 수학과를 졸업한 이현주(24)씨는 기업에서 후원받는 일을 진행했다. “처음엔 ‘과연 할 수 있을까’ 두려웠어요. 무작정 인터넷에서 전화번호를 검색해 연락하거나 이메일을 보냈죠. 대부분 거절당했어요. 하지만 기획서를 들고 가 좋은 취지를 설명하니 참여하겠다는 기업도 있었어요. 기업 발굴부터 계약 성사까지 직접 해내 뿌듯했습니다."

◇현직·퇴사자 참석해 생생한 이야기 들려줘

실제 취준생들이 진행한 콘서트는 내용이 알찼다. 행사를 앞두고 진행한 온·오프라인 설문조사 덕이 컸다. 취준생·직장인들이 진짜 알고 싶은 정보가 뭔지 설문한 것. 그 결과 기존 채용설명회에서 크게 2가지 문제점을 발견했다. 하나는 기업이 일방적으로 정보를 제공해 취준생과 쌍방향 소통이 없다는 점. 다른 하나는 대기업 위주로 진행돼 중소기업에 대한 정보를 얻기 힘들다는 점이었다.

취준생들은 이를 반영해 행사를 진행했다. 취업콘서트 1부에서 ‘중소기업 취업 전략’ 강연을 진행했고, 2부에서 현직자들과 질의응답을 진행했다. 더빅스터디에서 공부해 취업에 성공한 회원 6명이 멘토로 참석했다.

멘토들은 ‘현직자와 많이 이야기 하라’고 입을 모았다. 올 상반기 롯데마트에 입사한 최재민(31)씨가 말했다. “롯데마트 면접을 대비해 이마트와 홈플러스 등 마트를 열심히 돌아다니며 상권과 자체브랜드를 분석했어요. 집에서 가까운 롯데마트 의왕점에 찾아가 점장님을 무작정 만나 인터뷰도 했어요. 상품 진열은 왜 이렇게 했는지, 가격은 왜 이런지 물어봤죠. 마트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저절로 알게 됐습니다. 이렇게 공부한 내용이 면접에 그대로 나왔어요. 그리고 입사 후 해당 매장에 배치받았죠.”

최재민 씨는 이날 생생한 '실패담'도 들려줬다. 그는 미국 UC샌디에고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한인학생 회장을 지내며 '동해 표기 서명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덕분에 오바마 대통령상을 받았다. 스펙이 훌륭했다. 하지만 귀국 후 한국에서 2년 동안 취업을 하며 번번이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이 기간 쓴 자소서가 500개를 넘는다.

그러다 올 상반기 부터 “더 이상 떨어지면 한강에 간다”는 각오로 자소서 작성부터 새로 했고 롯데마트 입사에 성공했다. "그간 문제를 분석해 보니 자기소개서에 미국에서 한 활동만 나열했더라고요. 활동을 통해 무엇을 얻었고 어떤 고민을 했는지 풀어썼더니 합격했습니다."

멘토들은 입사 선배들에게 ‘하루 일과’를 물어보라고 조언했다. 그래야 직무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고, 회사원의 실제 고충을 엿볼 수 잇다. CJ제일제당은 자기소개서에 '영업사원의 하루를 예상하라'는 항목이 있었다.

우리은행 3년차 이승재(31)씨는 은행원을 ‘잔잔한 호수에 떠있는 오리’에 비유했다. “은행원을 엘리트 사무직으로 생각하시지만 실상 전쟁터입니다. 영업으로 시작해 영업으로 끝납니다. 사람을 설득해 상품을 팔고 수익을 내야 하죠. 야근도 많습니다. 흔히 ‘세븐일레븐’이라고 표현하는 데요. 은행 영업은 4시에 끝나지만 은행원은 그 후에 할 일이 더 많습니다. 이렇게 힘들어도 감내할 수 있을지 고민해보고 지원하길 바랍니다."

현직자들 뿐 아니라 퇴사자도 멘토로 참석했다. 이호형(28)씨는 8월초 CJ영업직을 그만두고 경찰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이다. “최종 합격하고 연수원 생활을 할 때 정말 행복했어요. 그런데 곧 새로운 고민과 문제가 생겼습니다. 막중한 책임감이 느껴졌거든요. 제품이 잘 안 팔리면 매출을 어떻게 올릴까 전전긍긍했 했어요. 새벽 1시까지 야근할 때도 많았고요. 이런 현실을 잘 알고 회사에 지원해야 합니다.”

취업콘서트 참여한 정유철(28)씨는 “그동안 채용 설명회를 많이 다녔지만 기업 이미지 때문에 안 좋은 이야기는 들을 수 없었다. 멘토들의 개인적인 경험과 에피소드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