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그룹→최초 고졸 아나운서 공서영 "성공은 학력에 비례하지 않아요"

    입력 : 2016.08.16 11:01

    고졸 아나운서로 인기 얻은 '야구의 여신' 공서영 아나운서
    걸그룹 지망생에서 아나운서 합격까지 인생 스토리
    "제 삶 자체가 대학이에요"

    “왜 공서영씨를 뽑아야 하죠? 설득해보세요. 조금 하다 그만둘 거 아닌가요? 연예인 재밌는 직업인데, 그걸 더 해보시는 게…”
     
     2010년 가을 KBSN 아나운서 면접장. 최종 면접에서 면접관이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면접 후보자 중 유일하게 긴 생머리를 하고 나타난 공서영(34·당시 28세)씨. 목소리를 가다듬고 답했다.
     
    “얼마전 영국 프리미어리그에서 박지성 선수가 오랜만에 골을 넣고 나서 ‘골을 넣으니 모두가 행복해졌어요’라고 소감을 말했죠. 박 선수처럼, 저도 힘든 시간 끝에 새 꿈을 찾았어요. 제 꿈을 펼치게 된다면 저뿐 아니라 주변의 많은 사람이 행복해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합격. 공서영 씨가 ‘국내 최초의 고졸 아나운서’란 타이틀을 갖게 된 순간이다.

    공서영 아나운서/잡아라잡

    고졸 가수지망생→걸그룹 클레오→다시 가수지망생→인터넷매체 인턴기자→아나운서...
     
    KBSN에서 1년 조금 넘게 일한 그는 2012년 XTM으로 옮겼다. 야구 프로그램 ‘베이스볼 워너B’ 진행자로 일하며 ‘야구 여신’으로 불렸다. 2014년 기획사 초록뱀에 둥지를 틀며 프리랜서가 됐다. 지금은 JTBC ‘1%의 정보’ OBS경인TV ‘공서영의 특별한 오늘’ 등 여러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나 인생 도전기를 들었다.
     
    ◇충북 영동에서 용났다
     
     “개천에서 용 난 셈이에요.” 충북 영동에서 1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농사를 짓던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가 생계를 책임졌다. 힘든 현실을 버텨냈던 돌파구가 노래. “노래가 그냥 좋았어요. 합창단 활동을 했고, 연예인이 되어 돈 많이 벌고 성공하겠다는 꿈을 가졌죠.”
     
    -대학은 왜 안 갔나요?
    “공부를 못하는 편은 아니었어요. 반에서 10등 안에 들었죠. 어떻게든 가겠다면 갔을 거에요. 그런데 대학이 가수란 제 꿈을 이뤄주진 않죠. 막연히 대학 가는 건 의미 없다고 생각해 포기했어요. 집안 형편 문제도 있었구요." 
     
    고3이 되면서 서울 기획사에 ‘오디션을 보고 싶다’며 전화를 돌렸다. 주말마다 기차를 타고 상경해 오디션을 봤다. 쉽지 않았다. ‘어중간하다’ ‘뛰어나게 예쁜 것도 아니고, 잘하는 것도 아니다’란 평가가 대부분이었다. 울면서 막차를 타고 집에 내려오는 게 다반사였다. 어쩌다 오디션에 붙어도 데뷔를 못해 기획사를 나오는 일도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도 이 생활을 4년 더 했다.

    잡아라잡

    -가수 지망생 생활이 어땠나요.
    “힘들죠. 생활비 벌기 위해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휴대폰 대리점, 빵집에서 일했어요. 그래도 노래학원 다닐 돈이 없었어요.”
     
    ◇꿈에 그리던 가수생활, 1년 만에 접다
     
    노력 끝에 2004년 클레오 5집의 멤버로 발탁됐다. 그런데 곧 좌절감에 빠졌다.
     
    -꿈에 그리던 가수가 됐잖아요.
    "댄스그룹을 할 생각이 없었어요. 발라드를 부르고 싶었거든요. 댄스곡을 불러본 적이 없고, 춤도 못 추는 편이었어요. 무대에 올라 춤을 추면서 ‘이게 내가 원하는 모습인가’란 생각을 계속 했어요.  당시 활동 멤버였던 언니들보다 노래, 춤, 얼굴이 잘난 것도 아니었구요. 즐거워야 할 무대가 스트레스가 됐어요. 전국 곳곳을 다니며 잠도 못 자고 노래했지만, 즐겁지 않았어요. 그저 하루하루 숨죽이며 살았어요.”

    클레오는 오래 가지 못했다.  2005년 공식 해체됐다. 다시 지망생 신분으로 돌아갔다. 서울 신당동에 작은 원룸을 얻어 생활하며 오디션 생활을 이어갔다.
     
    -어머니가 많이 참아주셨군요.
    “어머니가 없는 돈으로 원룸을 마련해주셨어요. ‘집에 못 가겠다. 무조건 서울에 남겠다’고 떼를 썼거든요. 너무 감사하고 죄송해요. ”

    공서영 아나운서가 인터뷰에 임하고 있다/잡아라잡

    이를 악물고 노력했다. 그러나 무대로 돌아가지 못했다. 거듭된 실패는 무기력한 삶으로 이어졌다. “방에 틀어박혀 살았어요. 사소한 일에도 화가 나고...”

    이때 위안이 돼준 게 야구였다. TV로 야구를 보며 허전함을 달랬다.  야구에 빠져들 무렵 지인 소개로, 한 인터넷신문에서 '사회인 야구' 담당 인턴기자로 일했다. “기자 하면서 야구를 더 잘 알게 됐어요. 스포츠와 제 매력을 복합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일이 하고 싶어졌어요. 스포츠 채널 아나운서가 떠오르더라구요.”
     
    ◇긴 생머리 빨간 옷의 아나운서 지원자

     
    2010년 무턱대고 지인들에게서 돈을 빌려 아나운서 준비 학원에 등록했다. 시작부터 난관이었다. 강사가 불러 앉혔다. “서영씨는 방송국에 이력서를 넣고 싶어도 학력 때문에 어려울 것 같아요. 지금이라도 대학 가는 게 어때요.”
     
    -학벌이 문제가 됐군요.
    “연예계에는 고졸이 많아요. 아이유 씨가 대표적이죠. 심지어 가수 서태지씨는 중졸이에요. 강사에게 ‘왜 학벌이 문제가 되냐?’고 되물었죠. 포기하지 않았어요."

    가수 지망생 때 이상으로 노력을 했다. 곧 KBSN 공고가 났다. 인사팀에 전화해 고졸 학력이 문제 되냐고 물었다.  "문제없다. 지원하라고 하더군요."
     
     1차 카메라 테스트 때 화제가 됐다. 모든 지원생이 단발머리를 하고 있을 때, 혼자 긴 생머리로 나타났다. 겉옷은 빨간색 카디건. 화이트와 블랙 일색의 경쟁자 중 유독 튀었다. “면접관들이 새롭게 봐주셨어요."

    면접 답변은 최대한 진솔하게 했다. "절박하면 절박한 대로 얘기하면서, 자신 있는 부분은 확실히 어필했어요. 다른 친구들에 비해 아나운싱 능력이 떨어질지 몰라도, 스포츠에 대한 해석은 나을 것이라고요. 방구석에 틀어 박혀 야구만 본 지원자는 흔치 않을테니까요."

    공 아나운서가 화이팅하는 모습/잡아라잡

    ◇동기 흉내 실패, 내 식대로 성공

    합격했다. 출근 첫날 ‘고졸 최초 아나운서’ ‘가수 출신 최초 아나운서’란 기사가 각종 매체에 실렸다. "함께 합격한 동기 3명은 4년제 대졸이었어요. 제 튀는 이력 때문에 저만 주목받아 눈치가 보였죠. ‘불편하다면 미안해. 피해 가지 않도록 잘할게’라고 먼저 얘기했어요. 자격지심 때문이었나 봐요.”

    예상대로 만만치 않았다. ‘동기 4명 중 1등을 못해도 꼴찌는 하지 말자’고 결심했지만, 냉랭한 시선이 많았다. “쟤를 왜 뽑았냐 같은 말들이 들려왔어요. 똑같은 잘못을 하면 다른 동기들은 ‘실수’지만 저는 ‘고졸이라' 못한 거였여요. "
     
    -자기 색깔을 찾지 못했던 것 아닌가요.
    “맞아요. 어쩌다 보니 동기들 흉내를 내고 있더라구요. 스포츠 선수와 인터뷰할 때면 상대 얘기가 아니라 제 질문에 집착했어요. 어법에 맞는지, 발음이 괜찮은지 집중했죠. '스마트'한 느낌이 나는 아나운서가 되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결과가 좋지 않았어요. 지나치게 또박 또박 얘기하려다 보니 '공서영은 북한식 발음을 한다'는 지적만 나오더군요."
     
    -어떻게 했나요.
    “제 식대로 했어요. 우선 침대 옆에 메모지를 비치했어요. 좋은 인용구가 떠오르면 자다가도 일어나 메모했어요. 인터뷰는 질문에 집착하는 게 아니라 대화하자는 생각으로 임했죠. 스포츠 용어는 최대한 순화해서 썼어요. 가령 야구 선수가 실수하면  ‘본헤드 플레이’(bonehead play)라고 하죠. 이런 표현은 유식해 보일지 몰라도 선수와 팬 모두에게 상처를 줄 수 있어요.  ‘아쉬운 플레이’로 표현했죠. 또 성실성으로 승부했어요. 무조건 일찍 나와 준비했어요. 어느 순간 칭찬하는 분위기가 조성되더라구요.”
     
    -스포츠 아나운서 출신이란 점에 자부심을 느끼세요.
    “제가 할 때만 해도 지상파 방송국으로 가는 ‘중간 커리어’로 보는 사람이 많았어요. 지금은 그렇지 않죠. 순수하게 스포츠 아나운서를 지망하는 친구들이 많아졌어요.”

    공서영 아나운서 인스타그램

    ◇내 삶 자체가 대학이었다

    공서영 아나운서는 현재 프리랜서다. 활동영역을 스포츠에서 예능, 생활정보, 시사 등으로 착실히 넓혀 가고 있다. 연수입은 억대에 이른다.

    -프리를 선언한 이유는요?
    “29살에 스포츠 채널 아나운서를 시작했어요. 얼마나 오래하겠어요. 대중들은 젊고, 새로운 스포츠 아나운서를 원하잖아요. 길을 넓힐 필요가 있었어요. 불안한 현실에 안주할 수 없었던 거에요. 프리로 사는 삶이 좋아요. 다양한 영역으로 진출할 수 있거든요. 다만 '연예인'은 아닙니다.”

    -생활은 어떠세요.
    일은 많은데 방송국 소속일 때보다 오히려 나아요. 방송국에선 방송 스케줄에 맞춰 규칙적으로 근무했어요. 지금은 제가 시간을 컨트롤할 수 있죠.
    방송 뿐 아니라 기업 홍보 영상 촬영 등 여러 일을 하면서도 시간 씀씀이가 자유로운 편이에요.”

    잡아라잡
    -현실의 벽을 뚫었다고 생각하세요?
    “여러 대학에서 연락이 왔어요. 입학시켜줄 테니 다니라더군요. 모두 거절했어요. 전 일을 통해 배워요. 집중력을 흐뜨릴 필요가 없어요. '성공은 학력과 비례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때때로 ‘석·박사를 가진 아나운서보다 잘한다’는 말도 들었는데요. 뭘(웃음). 저에 대한 시선을 자연스럽게 수용하면서, 저만의 색깔로 한계를 극복하고 싶어요.”
     
    -그래도 대학에 가면 새로운 걸 배울 수 있죠.
    “대학에 못간 걸 인생의 실패라고 느낄 때가 있었어요. 그러나 돌이켜 보면, 삶 자체가 최고의  배움이었어요. 그게 저한테는 대학이었던 거에요." 
     
    -마지막으로, 결혼 계획은 없나요?
    “지금은 일이 좋아요. ‘나이가 찼으니 시집가라’는 말은 안 들려요. 물론 정말 좋은 사람이 생기면 생각해볼게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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