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접 갔는데… 연애 기간 물어보네요"

취업난에 시달리는 청년들이 기업들로부터 '면접 갑질' '채용 갑질'까지 당하며 이중고를 겪고 있다. 대통령직속 청년위원회와 청년희망재단이 최근 구직 활동을 하고 있는 만 19~29세 청년 1068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한 결과 조사 대상의 64.8%가 "면접 과정에서 성차별 등 불쾌한 경험이 있었다"고 답했다. 이 때문에 '자존감이 떨어지고'(46.9%) '구직 의욕이 저하'(23.9%)된 것은 물론 '면접에 대한 공포까지 느꼈다'(14.6%)고 청년들은 말했다.

◇"외모 비하와 성차별 면접에 큰 상처"

청년 구직자들에 대한 면접관들의 갑질은 ▷적절하지 않은 질문(26%) ▷면접관의 불량한 태도(19.2%) 등이 꼽혔다. 이번 설문에 참여한 한 구직자는 "정글에서도 살아남을 것같이 생긴 게 성격이 예민한 건 아니냐"는 등 자신의 외모를 비하하는 면접관의 말에 상처를 입었다고 했다. "여자가 이런 일을 할 수 있겠느냐" "지금 애인과 연애 기간이 얼마나 되느냐"는 등 업무 능력과 무관한 질문을 받은 경우도 많았다. 면접관이 던진 부적절한 질문 유형으로는 '학력·경력 등의 비하'(48.2%) '개인 프라이버시에 관한 질문'(43.9%), '성차별적인 질문'(42.1%) 등 순으로 많았다.

구직 청년들에게 최소한의 예의도 지키지 않는 면접관들도 있었다. 설문에 참여한 한 구직자는 "지원자들을 앞에 앉혀 두고 면접관이 신발을 벗고 책상 위에 발을 올린 뒤 발을 만지는 경우도 있었다"고 했다. 지원자들을 대놓고 무시했다는 것이다.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최근 실시한 설문 조사에서도 '면접관이 면접장 안에서 담배를 피웠다' '면접장에 와서야 이력서를 처음 읽어 보더라'는 등 답변도 나왔다.

면접뿐 아니라 면접 전후 과정에서도 청년 구직자들은 불쾌한 경험을 했다고 답했다. ▷과도한 면접 대기 시간 ▷일방적인 면접 취소 ▷면접 결과 미통보 ▷합격 통보 후 다시 채용 취소 통보 같은 사례가 꼽혔다. 여성 구직자 박모(22)씨는 "최종 합격됐다는 통보를 받고 가족과 기뻐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이메일로 '착오가 있었다. 불합격'이라고 통보받았다"면서 "이후 회사 담당자와 통화하려 해도 '퇴근했으니 나중에 전화하라'는 답만 들었다"고 했다.

◇"노예가 되는 것 같아 구직 의지가 사라졌다"

면접에서 불쾌한 경험을 한 청년 구직자 가운데 "구직을 사실상 포기하게 됐다"고 답한 비율도 1.9%나 됐다. 4년제 대학을 졸업한 한 여성 구직자는 "몇 차례 면접에서 '너 아니어도 일할 사람 많아'라는 느낌을 받았다"면서 "(면접에서 이런 대우를 받고도) 취업을 하면 정말 노예가 되어버릴 것 같아 취업 의지가 사라졌다"고 답했다. 잡코리아 설문 조사에 따르면 면접에서 불쾌한 느낌을 받은 구직자의 40.7%는 "그 기업에 합격하고도 입사하지 않았다"고 답하기도 했다.

입사 지원 요건에 있어서 연령 차별이나 성차별 등 불합리한 관행은 사라졌지만, 구직자가 면접 과정에서 모욕적인 질문이나 부당한 지시를 받는 것을 막을 수 있는 방안이 사실상 없는 게 문제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일회성으로 이뤄지는 면접의 경우 부당한 일을 당했다는 객관적인 증거를 확보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청년위원회 설문 조사에 '2030정책참여단원'으로 참여한 김정현(28·울산과학기술원 재학)씨는 "취업 면접이 갑과 을의 시각이 아닌 존중과 배려의 시각으로 진행돼야 상처 받는 청년 구직자들이 줄어들 것"이라며 "상생의 고용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