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취업률 93.8%, 베트남어로 경찰 됐어요!

대기업에서 공무원, 경찰까지
베트남어과 직접 찾아가 채용설명회 열기도

부산외대 베트남어과를 나온 조민호(27)씨는 지난 2014년 외사경찰 특채전형으로 경찰시험에 합격했습니다. 외사경찰은 외국인, 해외교포 또는 외국과 관련된 기관이나 단체 등의 동정을 살피고 이들과 관련된 범죄를 예방 단속하는 것을 주된 임무로 하는 경찰을 말합니다. 그해 베트남어 전형 채용으로 13명이나 뽑았는데요, 남원경찰서 소속 조씨는 “급여 수준은 대기업에 비해 낮은 편이지만, 안정적인 직장일 뿐만 아니라 보람도 있어 만족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초봉은 약 3000만원 수준 정도입니다.

조씨는 “다문화 가정 비율이 중국 다음으로 베트남이 2위가 되면서, 경찰이 베트남어 전공 인력을 많이 구하고 있다”고 합니다. 2013년에도 10여명 뽑았고, 2016년엔 5명 채용 예정이라고 하네요.

 “학교 후배들 중엔 기업으로 취직한 사람도 많지만, 나처럼 경찰 등 공무원 특채전형으로 취직에 성공한 사람도 드물지 않다”고 말하는 조씨의 목소리엔 긍지가 묻어납니다. 청운대학교 베트남어과를 나온 김신화씨, 조화나씨도 외사경찰 베트남 전형으로 합격했다고 하네요.

 국내 기업의 제3세계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희소성 있는 특수어과들이 조용한 돌풍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특수어과 학생들은 다른 취업 준비생들과 차별화되는 언어 실력으로, ‘인구론’(인문계 학생의 90%는 논다)을 딴나라 이야기처럼 보이도록 만들었습니다.

 실제로 한국외대 태국어과의 최근 3년 간 평균 취업률(2012~2014)은 77.6%입니다. 같은 기간 마인어(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어)과는 75.5%, 인도어과는 73.8%로 인문대 다른 과에 비해 10~20% 높은 편입니다.
 
이 중 유독 눈에 띄는 곳이 한국외대 베트남어과입니다. 이곳의 최근 3년 간 평균 취업률은 무려 84.6%입니다. 베트남어과는 학년 별로 30여명 학생이 있는데, 2014년 졸업생 16명 중 15명이 취업에 성공하면서 취업률 93.8%를 기록했습니다. 롯데백화점 3명과 현대홈쇼핑 2명을 비롯해 롯데카드와 KT&G 등 베트남 현지 진출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유통업체들이 많았습니다.

지난해 상반기 CJ 제일제당에 합격한 이진재(26)씨는 입학 당시 아버지의 강력한 추천으로 한국외대 베트남어과에 들어갔습니다. 경북 구미 공단에서 일하던 아버지는 “중국 경제만 부상하는 게 아니라 베트남도 주목해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이씨는 반신반의하며 아버지 뜻에 따랐습니다.

 이씨는 “베트남어 실력은 일단 기본이고, 2학년 때 다녀온 베트남 어학연수를 어필했던 것이 합격에 큰 도움이 된 것 같다”고 말합니다. 제일제당은 베트남 등 동남아 지역에서 사업을 확장하고 있었습니다. 이씨는 맞춤인재였던 셈입니다. 현재 해외 영업팀(동남아 파트)에서 일하고 있는 이씨는 약 4500만원 수준의 연봉을 받고 있다네요.

 한국외대 베트남어과 측은 “베트남에서 사업을 확장할 기업에서 베트남어를 구사할 수 있는 학생들을 인턴 혹은 신입 사원으로 채용하고 싶다는 공문이 계속 온다”고 말합니다. 그 결과 베트남어과 재학생들의 경우 재학중 일찌감치 취업을 결정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고 합니다. 이른바 입도선매네요. 입도선매란 아직 베지도 않은 벼를 미리 쌀 값을 내고 사가는 것을 말합니다. 인기폭발이라는 이야기입니다.
 
부산외대 베트남어과도 마찬가지입니다. 2013년 74.5%, 2014년 64.4%, 2015년 71.1%로 같은 학교 인문계열 평균취업률인 61.68%도 10% 이상 높습니다.
 
물론, 베트남어 실력만 있다고 해서 채용이 100% 결정되는 건 아니라고 베트남어과 재학생들은 말합니다. 청운대 베트남어과 재학생 A씨는 “베트남어 실력이 취준생에게 강력한 무기가 되겠지만, 기본적인 스펙이 부족하다면 취업이 쉬운 것 만은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동남아 시장 공략에 나선 기업들은 적극적으로 베트남어를 구사하는 인재 영입에 나서고 있습니다. 실제로 CJ와 한세실업은 2010년대 들어 베트남어과에서 매년 채용설명회를 열고 있습니다.

 베트남어 우대 조건을 명시한 기업도 늘고 있습니다. 현대홈쇼핑, 금호아시아나그룹, LG패션, 롯데백화점, 롯데마트 등에서 베트남어 능력자를 구하고 있습니다. SPC그룹의 파리크라상은 영업 분야 채용에서 중국어·베트남어 능통자 우대를 명시했고, CJ올리브네트웍스는 베트남어·인도네시아어가 가능한 정보기술(IT) 시스템 개발자를 실제로 뽑기도 했습니다.

 은행도 예외가 아닙니다. 지난해 12월 2일 신입 행원 최종합격자 230명을 발표한 신한은행은 “글로벌 영업을 확대하고 있는 만큼 인도네시아어·베트남어 구사자들를 다수 뽑았다”고 밝혔습니다. 2020년까지 해외 점포를 500개로 늘리겠다는 목표를 세운 우리은행도 지난해 신규 채용을 할 때 베트남어·마인어·인도어·러시아어·포르투갈어를 할 줄 아는 지원자를 20여 명 따로 뽑았습니다. 한국외대 베트남어과를 나온 이하늬, 허지선씨도 베트남어 특기를 살려 신한은행 공채에 합격했습니다.

 포스코가 운영하는 ‘포스코 스칼라십(장학)’을 받은 학생 가운데 가운데 베트남어과와 마인어과, 인도어과 학생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하네요. 포스코 스칼라십은 재학 중 현지 어학실습 기회를 제공하고 졸업하면 포스코 취업을 보장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이처럼 베트남어에 대한 수요는 꾸준히 늘고 있지만, 정작 베트남어를 할 줄 아는 전공자는 찾기 쉽지 않다는 게 인사 담당자들의 얘기입니다.  중국 지점과 베트남 사무소를 두고 있는 대구은행 관계자는 “지난 채용에서 중국어 능통자는 많이 뽑을 수 있었지만 베트남어 능통자는 없어 채용하느라 애를 먹었다”고 토로합니다.

 전국 대학 중 베트남어를 가르치는 곳은 한국외대와 부산외대 그리고 충남에 있는 청운대학교 뿐입니다. 이 중 부산외대는 지난해 베트남어과, 태국어과, 인도네이시아과 등을 동남아시아융합학부로 통합했다고 합니다. 학생들이 학과 구분에 상관없이 베트남어 등 소수어 능력을 키우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하네요.

 베트남은 지난해 우리 수출 대상국 순위에서 중국·미국에 이어 3위에 올랐습니다. 삼성전자·LG전자 등 한국 IT 기업의 주력 생산기지로 부상해 한국산 부품소재 수출이 크게 늘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는 베트남에 대규모 스마트폰 생산단지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베트남은 인구 1억명의 내수 시장을 가진 곳입니다. 또 올해 6%대 경제성장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수출전진 기지가 아니더라도 미래 전망이 밝다는 이야기입니다. 베트남어 전공자에 대한 기업들의 애정 공세는 당분간 계속될 것 같습니다.